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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인의 일기 - 개교식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노인의 일기 - 개교식

SooyangLim 2020. 12. 28. 21:59

행성 마타마이니 4332년의 마지막 날, 그 날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요양 병원의 1인실에 중년의 여인이 익숙한 듯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다가 노인이 의식을 갖고 깨어있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노인이 깨어 있음에 감격해서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와 나이에 비해 주름이 얼마 없는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일어나 계시네요? 좀 어떠세요?"

 중년의 여인은 목도리를 풀며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 병실 침대 옆 탁자 위에 웬 낡은 책 같은 것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일기장이에요?"
 "···지금 읽어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고."

 여전히 새어나오듯 약한 목소리이지만, 의식이 흐렸을 때와 달리 노인은 나름 단호하고 힘 있게 말했다.

 그런 노인의 말에 ‘굳이?’ 라는 생각과 의아함 때문에 중년의 여인이 반문했다.

 "···지금요?"

 꽤 두께감이 있는 여러 권의 일기장이었다. 지금 다 읽어 볼 수는 있나 싶은 의문이 드는 정도의 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간 노인을 봐오면서 가진 물건들 중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만큼 꽁꽁 감춰둔 일기장이었다.
 호기심이 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내키지 않는 마음과 궁금증, 그리고 알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동시에 깃든 손길로 중년의 여인은 낡은 표지를 잠깐 쓰다듬듯 만졌다가 첫 페이지를 넘겼다.




* * *

 행성 마타마이니의 마타마이니력 4257년-

 그날은 마타마이니의 구레아국에 새로 지어진 학교의 개교식이었다.

 개교식 축하 연설을 위한 단상에는 우주 9구역에서 마타마이니로 파견된 통치자 중 한 명이 올라섰다. 그는 구레아국과 주변 국민들의 대량 학살하고 고문으로 수많은 이의 몸과 정신을 불구로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는 구레아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신지식을 위한 새로운 학교를 세워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비로운 인물로 추대되어 개교 연설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학교 후원금은 구레아 시민이 모은 돈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그가 단상 위에 오르자, 단상 앞에 모인 많은 이들은 마치 개선장군이 들어온 것 마냥 환호를 보냈다.

 환호하는 무리들 틈에서 한 장신의 남자와 소년의 외양을 한 이들이 분위기에 맞춰 적당히 박수를 쳤다. 
 
 "너무 큰 사고 친 거 아니에요?"

 소년은 장신의 남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멋대로 여기까지 와서는 이런데 후원한다고 돈을 퍼부으시다니······."

 소년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이건 그냥 보여주기일 뿐인 거 아시잖아요?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알고 있어."

 장신의 남자는 소년의 걱정스런 말에도 마치 큰 동요 없는 사람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장신의 남자는 눈 안에 일렁이는 어떠한 감정을 누른 채 그저 적당히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

 "···정말로 우펜자를 만날 생각이신 거예요? 그냥 별 거 없으면요? 이러다 잘못돼서 큰 일 나면요?"

 소년은 시끄러운 틈을 타 우펜자 라는 인물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러자 장신의 남자는 갑자기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것보다 지금 진짜 더 큰 일이 난 것 같은데."
 "예!?"
 "똥 마려. 급똥이야."

 어느새 장신의 남자는 진짜로 화장실이 급했던지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말에 소년이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화장실도 안 갔다 오신 거예요?"
 "나올 때 급하게 나오다 보니······."

 그들은 인파 사이를 비집고 나갔다. 그들은 가까이 있는 뒤에 새로 건립된 학교 건물 중 하나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앞에 군복 차림을 한 우주 9구역 출신 경찰이 서 있었다.

 "현재 건물에 출입할 수 없다."
 "왜!?"

 장신의 남자의 안색은 더 안 좋아졌다. 이젠 배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급한데 잠시만 좀······."

 경찰은 그의 상태를 보고 강경하게 진압하거나 쫓아내지 않고 기밀사항까지 말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미안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라. 개교식에 위험한 짓을 벌인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통제 중이다. 학교 밖 화장실까지 10분만 걸으면 된다."
 "10분!?"

 장신의 남자가 10분이라는 소리에 기겁을 했다.
 
 그 뒤에서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년은 위험한 짓이라는 단어를 듣고 혼자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폭발사건이 일어난 날인가.’ 

 "흐음······."

 그 때 소년의 생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실아."
 "네?" 

 장신의 남자는 소년을 ‘옥실’이라고 차분하게 불렀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빡!

 "억!"

 장신의 남자가 경찰이 한방에 고꾸라질 만큼 경찰의 머리를 시원하게 후려 깠다.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남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쳤어요!?"

 옥실은 바로 경찰에게 인질로 잡혀 제지당했다.

 경찰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다른 경찰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저 새끼 잡아!"
 "무슨 일이냐!?"
 "침입자, 침입자가 있··· 으악!"
 "이 애새끼가!"

 옥실이 경찰들을 저지하기 위해 결국 가세했는지 경찰 몇몇이 달라붙어서 난투를 벌이면서 소란이 지속됐다. 장신의 남자는 그런 소란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쭉 내빼버렸다.
 


 온갖 난동을 뒤로 한 채 장신의 남자는 어느새 시원하고 행복한 얼굴로 변기 위에 앉아있었다.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칸 안에서 그는 마치 바깥의 난장판은 모두 자신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시원하고 평온해 보였다. 

 
 "후우~"

 장신의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내며 볼 일을 끝내고 휴지걸이로 손을 뻗었다.

 "어?"

 휴지걸이는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새 건물에 무슨 휴지도 안 걸어놨어!?’

 새 건물이니까 아직 휴지가 없다는 생각도 안 하는지 그는 뻔뻔할 만큼 자기 위주의 생각을 했다.
 다시 위기의 순간을 맞은 장신의 남자는 당황해서 다시 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옆 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작게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며 말을 걸어왔다.

 "흠흠······. 올 줄 몰랐는데······. 선생은 안 그러시겠다더니 또 이렇게······."
 "음?"
 "따라 붙거나 들키지는 않았소?"

 옆 칸의 말소리에 장신의 남자는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와 구원을 받은 기분이 되었다.
 장신의 남자는 기쁘게 말을 이었다.
 
 "어? 그 쪽도? 따라붙는 사람 있긴 할 텐데 아마 내 그··· 조수···가 처리할 걸."

 장신의 남자는 옥실을 조수라고 지칭하는 표현에서 잠깐 멈칫하며 말했다.

 "그렇군······. 시간이 별로 없겠구려, 동지."
 "저··· 그래서 말인데······. 급하게 와서 그런데 남는 거 있으면 줄 수 있···어요?"

 장신의 남자가 존댓말을 하며 조심스럽게 휴지를 요청했다.

 그 말에 옆 칸 사람은 여전히 작지만 놀란 목소리 톤에 한심함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런 걸 빠뜨린단 말이오!? 허, 참······."

 잠깐 부스럭거리더니 화장실 칸막이 아래의 공간으로 손목시계를 낀 손이 스윽 나타났다. 그의 큰 손에 거의 가려진 휴지심 같이 생긴 무언가에서 둘러져 있었다. 그 물체는 갖가지 색깔의 선이 삐죽삐죽 드러나 있었으며 불길하게 삑삑 거리는 기계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별 생각 없이 그걸 받아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묵직한 무게감에 눈앞에 들고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라 할 때쯤에는 이미 완전히 그의 손에 넘어온 뒤였다.
 장신의 남자는 손이 덜덜 떨리고 안색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폭탄!?’

 곧이어 들려오는 옆 칸 사람의 말은 장신의 남자의 불길함과 의심에 확신의 방점을 찍었다.

 "곧 터지니 어서 갑시다!"

삑 삑 삑

 달려있는 초시계는 30초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옆 칸에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칸 밖으로 나가려는 소리가 들렸다.
 
 장신의 남자는 드디어 상황 파악을 하고 똥을 닦았거나 말거나 다급하게 옷을 여미기 시작했다. 폭탄을 보니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어진 모양이다.

 "어서 나오시오. 내가 보호 쉴드를 깰 테니 임자가 바로 던지면 되오."
 "아니 저 잠깐만 선생님? 저기 저는"

 장신의 남자가 급하게 화장실 칸 밖으로 나오며 다급하게 말을 했다.

 "찾았다!"

 갑자기 화장실 문 앞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신의 남자는 놀라서 몸이 얼어붙었다. 순간 뇌 정지가 온 듯했다.

 "칫!"

 그 찰나의 순간 옆 칸 남자는 재빠르게 그가 들고 있던 폭탄의 안전핀을 입으로 뽑더니 화장실 창밖으로 던졌다.  모두가 헉 하는 순간, 모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일어났다.




 작은 원통형의 폭탄이 개교식 연단 위로 날아왔다.
 앞에 서 있던 인파 중에 몇 명은 그 물체를 인식했다.
 
 "어?"

 누군가의 의문이 담긴 외마디가 입 밖에 나오기 무섭게 그 폭탄은 보호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게 설계된 뭔가에 부딪혔다.
 
쾅!

 엄청난 굉음과 진동이 퍼짐과 동시에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탕!

 폭발의 굉음이 퍼져나가는 그 순간, 건물 안 화장실에서는 총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묻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귀에만 들렸다.

 그리고 어느새 장신의 남자는 옆 칸 사람에게 붙잡혀 목 근처까지 칼날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무기 바닥에 내리고 손 들어."

 어차피 곧 경찰들이 몰려 올 테니 궁지에 몰린 거나 다름없기에 이딴 인질극은 아무 소용없었다. 하지만 옆 칸 사람은 짐짓 태연한 척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던 장신의 사람의 손에서 슬그머니, 빠르게 폭탄을 회수했다.

 장신의 남자는 마치 자신이 인질처럼 붙잡힌 상황처럼 보이긴 하지만, 옆 칸 사람이 그의 몸에 기댄 채 부들거리며 정신력으로 겨우 명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전의 그 총성이 옆 칸 사람의 복부를 뚫었기 때문이다.

 옆 칸 사람은 인질극을 벌이는 척 장신의 남자를 붙잡았지만, 사실 총에 맞은 순간 장신의 남자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바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 사이로 꺼져가는 목소리가 장신의 남자의 귀에 들려왔다. 옆 칸 사람은 장신의 남자의 귀에 대고 그만 들을 수 있도록 빠르게 말을 이었다.

 "희생은··· 나만으로 충분하오. 그대는··· 살아서··· 해방을 보시오······."

 ‘어 설마’


 옆 칸 사람은 마지막 힘을 짜내 그를 강하게 밀쳤다.


 
 건물 밖에는 경찰관들이 바닥에 기절한 채 쓰러져서 차곡차곡 여럿 쌓여있었다. 그리고 옥실은 의식을 잃은 채 쌓여 있는 경찰관들 위에 앉아서 새로 온 다른 경찰관들에게 항복한 척, 진압된 척 감시를 받고 있었다.

 별안간, 옥실은 갑자기 귀를 막고는 주문 같기도 하고 암호 같기도 한 뭔가를 중얼거렸다.
 
쾅!

 폭탄이 터지며 건물에서 화장실이었던 부분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화장실 배관이 터지며 물과 연기가 잔뜩 피어올랐다.

 또 한 번 일어난 강력한 폭발에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던 인파 속에서 다시 공포로 가득 찬 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장신의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놀란 얼굴로 뒤돌아봤다. 좀 전까지 외벽이 있던 곳은 이제 자욱한 수증기 뒤로 벽이 아닌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귀가 먹먹했다.
 바깥에는 비명소리와 무언가 소리치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겠지만 그의 귀에는 그저 삐 소리와 먹먹한 소리 뿐 이었다. 장신의 남자는 자신 옆으로 지나가는 경찰들의 당황한 발걸음 소리와 고함에 가까운 명령 소리도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가만히 있었다.

 아니, 사실 들리는데도 그냥 한 곳에 정신을 뺏겨서 신경 안 쓴 것 뿐이었다.

 그는 배관이 터져 물이 가득한 바닥에 붉게 퍼지는 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경찰이 그의 팔을 당겨 일으켜 세우고, 포박하고, 연행하는 와중에도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믿기지 않는 사실을 본 것처럼, 의문이 가득 한 것처럼, 현실감을 못 느끼는 것처럼.

 마치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이 많은 얼굴로, 어찌 보면 얼빠진 얼굴로.
 
 장신의 남자는 수사를 위해 심문 받고 고문기구들이 걸려 있는 방 안에 들어가서 까지도 계속 그런 얼굴이었다. 담당 형사는 이것저것 물었으나, 그는 계속 그런 얼굴로 일관된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은 화장실이 급해 들어간 것 뿐 이라며,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 내에서는 가장 진실된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형사가 고문기구의 사용 전 마지막 기회를 주려는 찰나, 갑자기 다른 형사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금 들어온 형사는 장신의 남자를 심문하던 형사에게 무언가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말하는 동안 장신의 남자를 흘끗 바라봤다. 

 몇 번의 끄덕거림과 눈알의 굴러감이 있고 난 뒤, 이윽고 장신의 남자를 심문하던 형사가 입을 뗐다.

 "···석방이오. 집에 가시오."



철컹

 쇳소리 묵직한 창살을 뒤로 하고 장신의 남자는 홀로 천천히 긴 복도를 걸었다.

 그 때 장신의 남자가 걷고 있는 복도 저편에서 양 옆에 간수로 보이는 두 사람이 중간에 누군가를 포박해서 데려 오는 것이 보였다. 중간에 포박당한 사람은 하반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포박당한 남자는 거의 절반은 끌려오다시피 장신의 남자가 걷는 방향의 반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얼굴에 천으로 된 용수가 뒤집어씌워져 있었다.

 장신의 남자는 그들을 지나쳐갈 때 슬쩍 용수를 쓴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포박된 사람의 등 뒤로 묶인 손목에 있는 손목시계에 시선이 꽂혔다. 장신의 남자가 휴지가 아닌 폭탄을 안 가져 온 것으로 착각해서 화장실 칸 아래로 폭탄을 건네줄 때 보이던 그 손목시계였다. 

 장신의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뒤로 포박 당해 연행되는 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당당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사실 어머니가 해주는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아들이고, 여동생이 시집갈 때 자신이 몇 년 동안이나 일해서 모은 돈은 기꺼이 내어주는 오빠였고, 술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져서 홍당무라고 놀림 받는 친구였고, 선생님이 뭔가 물으면 얼굴이 빨개져서 우물쭈물하지만 나름 정답은 잘 맞히는 제자였고, 신문 인쇄소에서 사장이 부르면 언제나 긴장된 얼굴로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직원이었다. 그는 마타마이니 행성 해방운ㄷ

탕.

 마타마이니 행성력 4229~4257
 총살.



 장신의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자신의 뒤로 들려온 총성 소리를 듣고서야 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교과서에 이름 실리지 못한 인생이 총성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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