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림

Quiet? Quite! 2부 26화 본문

소설(Novel)/D.Q.D.(캣츠비안나이트 외전)

Quiet? Quite! 2부 26화

SooyangLim 2024. 1. 1. 19:01

 "야식 먹자. 배고프다"

 멤버 하나가 제안했다.

 "시킬까?"

 주현이 휴대폰 배달앱을 켜며 말했다. 주현은 이제 매운 음식은 쳐다도 안 봤다.

 "연어 샐러드랑 닭가슴살 샐러드 중에 어느 거? 아님 전복죽?"
 
 샐러드와 죽이라는 말에 늘어져 있던 다른 멤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그 신경 가스 다시 좀 마시면 안 돼?"
 "닥쳐."
 "그럼 좀 야식 같은 걸 시켜 봐. 살도 안 찌는 양반이 샐러드라니."
 "나야 뭘 먹든 상관없지만, 너네는 아니잖아. 내일 오전에 스케줄 있는 건 알지?"
 
 주현의 말에 춤 담당 멤버가 말했다.

 "아~ 매운 거 먹을 때가 좋았지~"

 그 말에 막내 멤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너무 매웠어."

 잠시 후 멤버들의 의견을 절충해서 설렁탕 몇 그릇이 배달 왔다. 한 멤버가 뜨끈하고 진한 국물에 밥을 말면서 말했다.

 "아참. 변호사한테 얘기 들었어?"
 "뭐?"
 "악플러들 기소 들어갔대."
 "빠르네."
 "근데 간단하게 끝날 것 같지가 않나 봐."
 "왜?"

 그 말에 주현이 석박지를 하나 집다가 손을 멈추고 물었다.
 악플러 고소 건 이야기를 꺼낸 멤버가 말했다.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있다나 봐. 다른 소속사들도 더 얽혀 있고, 사이비 놈들하고도 뭐가 있다고 하더라고. 뭐가 더 엮여 나올 것 같다는데?"
 "다른 소속사도 있으면 누명 벗는 사람들 많겠네."

 주현이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그리고는 입에 석박지를 넣었다.
 고소 건 이야기를 꺼낸 멤버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씁쓸하게 말했다.

 "아마도? 뭐, 밝혀져도 다들 관심도 없겠지만."
 "그러게……. 그나저나 그 사이비 놈들이랑 악플러들하고도 연관 있다니."
 "몰랐었어?"
 "응. 그 얘기는 못 들었어."
 "전 첫사랑한테 들은 줄 알았는데?ㅎㅎ"

 고소 건 이야기를 꺼낸 멤버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제 주현과 미경의 이야기는 멤버들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주현은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형사님이라고 해."
 "ㅎㅎㅎ 알았어."

 멤버는 놀리려던 계획이 안 먹히자 아쉬운 듯 낄낄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사찐 찍힌 멤버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뒷배는 다 사이비 종교 그놈들이야? 우리 꼬시려 들었던 Bad도?"
 "아니. 뒷배라고 하긴 좀 그래. 그냥 연관이 있는 정도? 사이비도 그렇고 대부분은 다 꼬리야."
 "그럼 악플러들도 그렇겠네?"
 "아마도."

 그 때 눈치를 보던 막내 멤버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형은…어떻게 하기로 했어?"
 "뭘?"
 "그동안 형이 힘들어했던 거 있잖아…?"
 "?"
 "힘들었던 거 다… 음… 드러낼 건지…"
 "아, 피해 입은 거 제출 하고 민사 때릴 거냐고?"

 주현은 가볍게 말하고는 국밥을 한 숟갈 입에 넣어 삼키고는 말했다.

 "난 솔찍히 굳이 그래야 되나 싶긴 했어."
 "……."

 막내 멤버는 그 대답이 맘에 안 드는지 국밥을 바라보며 그저 숟가락으로 휘적거렸다. 
 주현은 또 한 입 먹고는 말했다.

 "그게 예전에 내 생각이었지."
 
 그 말에 손을 멈추고 막내 멤버가 주현을 바라봤다.
 주현은 막내 멤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관용이 도구가 되는 걸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바라보고만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 가끔은, 최소한의 도덕조차 안 지키려는 이들한테 베풀어진 관용이 과연 장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옳은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 말에 막내 멤버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어렵다……."
 "뭐, 그 이전에."

 주현이 또 한 입 가득 입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리고는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내가 힘들었던 일을 만인한테 밝히는게 지금 나한테는 가장 큰 고민사항이지."
 "……."
 "아무리 숨기면서 진행한다 해도 세상에 비밀이란 게 어딨겠어? 어떻게든 말이 새어나갈 건데."
 "…형 하고 싶은 대로 해. 형이 힘들지 않게."

 막내 멤버가 어느새 숟가락에서 손을 뗀 채 말했다.
 그 때 텔레비전에서 멤버들이 듣고 싶었던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ㅇ월 ㅇㅇ일 그룹 Bad와 종교단체 ㅇㅇ와 관련된…」

 "어 나온다."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텔레비전에 꽂혔다. 경찰과 검찰의 언론 합동 발표 화면이 나왔다.

「…특수 폭행 혐의로 ㅇㅇ년을 구형하고, 마약 유통 업자와 소지자에 대해서 ㅇㅇ년 구형하며, 신경가스 제조자 및 유포자에 대해… 」
  


 형사 재판 선고일.

 이목이 집중 되서 일까? 아니면 죄의 여부가 명백해서일까? 특정 몇몇 인물들의 선고일은 꽤나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년 단위로 걸리는 법정 공방들도 매우 빠르게 종료될 것처럼 보였다.

 판사가 들어오기 전, 법정 안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웅성거렸다. 모두가 형은 내려질 것이라 예상했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얼마나 선고될 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 때 판사들이 들어왔다.
 법정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법정 안의 모든 이들이 판사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사는 천천히 입을 뗐다. 

 법률 용어가 주르륵 지나갔다. 이윽고, 판사는 선고문의 마지막 부분을 읊기 시작했다.

 "…피고인을 징역 2년 6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집행 유예 기간 재범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판결에 불복할 경우 1주일 내 항소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몇몇 범죄자의 선고가 내려졌다. 
 두 자리 수 구형은 한 자릿수로 줄어들어버렸다. 그렇지만 걔 중 일부는 높은 형량을 처맞고 바로 감방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꼬드김을 당한 이들 대다수는 고의성이 없고 속은 것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를 받거나 별 일 없이 풀려났다.



 "미쳤네, 진짜. 신경 가스? 마약 거래? 성폭행?"

 사건의 모든 진상이 풀리고, 연일 때려대는 뉴스를 보던 한 시민이 라면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시민들은 사이비 종교 놈들의 악랄한 수법에 기겁했다. 

 "와 저 놈들은 해외까지 손 뻗은 거야?"

 라면을 먹던 시민은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놀람을 표현했다. 시민은 해외까지 뻗힌 마수에 경멸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5시경, 동해상 독도 인근 바다에서 괴생물체가 발견 됐다는… 신종 심해어로 추정되고… 」

 시민은 다른 뉴스로 넘어가자, 라면을 먹다 말고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방금 본 신경가스 사건에 대해서 검색을 했다.
 
 "와 씨, 나라 망신이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나라마다 뉴스가 알고리즘으로 죄다 끌려 나왔다. 연관된 나라들이 크고 작게 들썩이고 있었다. 

 "**끼들."

 라면 먹던 시민은 이 사건에 연루된 유명인들의 명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걔중에는 해명이 된 이들도 있었지만, 이 시민은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보진 않았다. 왜냐? 귀찮으니까. 딱히 관심이 가는 인물이 아니면 눈앞에 들이밀기 전까지 굳이 일일이 찾아볼 일은 없다. 들이밀어도 외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 얘도?"

 라면을 먹던 시민은 명단의 해명이 완료된 누군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민은 언제가 이 일을 잊겠지만, 감정은 남았다. 아마 이 시민에게는 어느 날 그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이 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이나 관련 영상과 기사, sns를 보던 시민은 알고리즘에 이끌려 기계음으로 범벅이 된 영상 하나를 봤다.
 
 "응?"

 이제 라면은 까맣게 잊고 이 일을 찾아보는 데 정신이 팔린 시민이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사회 고위층과 종교, 신이 어쩌구, 종말 어쩌구 하는 음모론이었다.

 "에이."

 여기까지 보고서야 시민은 휴대폰을 닫았다. 더 이상의 정보는 무시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은 이 시민의 폰에 이번 사건과 관련된 알고리즘이 따라다닐 예정이었다.



 "어서 와!"

 주현이 집에 도착하자 부모님이 환히 웃으며 반겼다.

 "차 안 막혔어?"
 "네. 낮이라서 괜찮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요?"
 "내가 얘기 안 했나? 지난 주부터 바다 구경하러 여행 가셨어."
 "바다요?"
 "거동이 불편하시니까. 이제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셔서 일정을 좀 길게 잡아드렸어."
 "아아……."

 주현이 밥상 앞으로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상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있었다.

 "어? 어쩐 일이세요?"

 주현은 아버지가 주방에서 조리 도구를 들고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왔어? 그, 오늘은 네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내가 고기를 사 와서……."

 주현의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오늘 웬 일로 도와주더라고. 가사 도우미분한테 손 안 벌리고 자기가 하겠다고 얼마나 난리인지! 너 온다고 며칠 전부터 얼마나 부산을 떨었는지 몰라."

 주현의 어머니가 주현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흠. 어서 먹자."

 주현의 아버지가 다 들었는지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멋쩍게 말했다.
 주현은 가족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현이 말하기 불편한 주제가 나왔다.

 "그럼 이제 다 밝혀진 거니? 이제 오해할 일은 없겠지?"
 "그렇긴 한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요."

 주현이 씁쓸하게 말했다.
 주현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근데 사람이 어떻게 그러나 몰라? 신경 독소를 퍼뜨려서 감염시킨다니! 앞으로 또 이런 일 있을지 모르니 마스크 잘 쓰고 다녀야겠어. 근데 마스크 껴도 소용없으면 어쩌지? 정말 무서운 세상이야."
 "…손목은 괜찮아?"

 잠자코 있던 주현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현은 아직 손목 보호대를 하고 다녔다.
 주현은 밥에 시선을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네, 뭐……."
 "주현아."
 "네?"
 "엄마랑 아빠는 언제나 널 믿고, 네 옆에 있을 거야."
 "……."
 "널 절대 포기 하지 않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현은 이 말을 기다려왔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뭉클함과 동시에 눈물이 울컥 올라올 뻔 한 것을 참았다.

 그러다 주현은 문득, 주현의 부모님은 두 번이나 자식을 먼저 보낼 뻔 했다는 것을 상기했다. 주현을 사람 하는 사람을 줄 세우면 지구 한 바퀴 돌 거라던 미경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그 줄의 첫 번째에는 주현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까?
  독가스에 당했든 어쨌든 주현은 부모님께 이런 고초를 겪게 해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주현의 부모님이 먼저 말했다.
 
 "미안하다. 잘 못해줘서……."
 "아, 아니…"
 "너를 그렇게 몰아세우면 안 됐었는데……." 
 "……."
 
 부모는 언제나 못해준 것만 기억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주현의 부모님은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런 부모님이었다. 아니, 어쩌면 꽤 괜찮은 부모님이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잘못도 하고 부족한 점도 있는, 그냥 그런 부모님이었다.
 주현의 이런 생각에 누군가는 아마 하나하나 조건과 요소를 따지면서 좋고 나쁨, 우열과 서열을 가리려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요소와 조건들이 주현에게는 딱히 의미가 없었다. 주현에게 부모님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그냥 유일한 부모님이니까.

 신경 독소의 피해에서 회복 중인 주현은 이제 감정과 함께 여유도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생긴 여유는 드디어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주현의 눈에, 이제는 흰 머리가 내려앉고 주름이 곳곳에 패인 부모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느새 부모님은 어렸을 때 주현의 기억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부모님은 조부모님의 모습과 더 닮아 있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을까?
 언제나 곁에 있겠다 했지만, 이제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가슴 깊숙이 다가왔다. 주현은 참으려 했던 눈물이 천천히 차올랐다. 
  
 "…죄송해요."

 주현은 이 말을 뱉자마자 결국 눈물을 왈칵 쏟았다. 


 
 "여보세요?"

 주현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 동안 못 봤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네. 어어. 어? 아 그래?"

 주현은 집 근처 식당에 친구들이 간만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현은 차를 돌려 친구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무슨 일이야? 다들 모여 있고."
 
 주현이 식당에 들어서며 물었다. 주현의 질문에 친구 하나가 주현을 위해서 자리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이 자식 직장 때려칠 거래."
 "어? 갑자기? 왜?"

 주현은 그 친구가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걸 알고 있었기에 화들짝 놀랐다. 

 "안 그래도 다니기 싫어서 꾸역꾸역 다니고 있었는데 지방 발령 났데."
 "아 *발 *같다……."

 직장을 때려친다는 친구가 욕지거리를 했다.  
 다른 친구가 전자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그러게 군대 나오자마자 대학 자퇴하랬냐?"
 "닥* **놈아. 담배나 니 인생에서 자퇴하라고 *친 ㅅ끼야. 당장 밖으로 꺼져."
 "할 말 없으니까 공격하는 꼴 잘 봤다ㅋㅋㅋ"
 "전자담배도 안에서 못 피우니까 꺼지라는 거라고 **끼야."
 
 친구의 상냥한 지도에 전자담배를 입에 문 친구가 낄낄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다른 친구가 직장을 관둔다는 친구의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이 *끼 지방 가면 더 징징댈 거임."
 "그만둘거라니까?"
 "내가 올해 너한테 그만둔다는 말 100번도 더 들었음."
 "아 이번에는 진짜라고."
 "그래그래. 나도 이제 안 받아줄 거니까 여친이나 만드셈."
 "왜 얘기가 그 쪽으로 튀냐?"
 "그러면 외롭다고 나한테 징징대는 걸 멈추든가. 내가 니 애인임?"

 그러더니 그는 주현에게 비밀 얘기를 하는 것처럼 손을 입 쪽에 대는 척하며 큼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끼 맨날 나한테 외롭다고 *랄함. 사람은 많은데 친구 없다고 맨날 나한테 전화함. 징글징글한 *끼."
 "아 회사 *끼들 얘기할 데가 너네 밖에 없다고. 친구 아니면 내가 어디다 얘기하냐. 그니까 니네 나랑 꼭 붙어있어라. 회사 *끼들 맨날 욕하게."
 "이 *끼 회사 인간들 *같다고 삼시 세끼 나한테 전화해서 개 깜."

 비밀 얘기 하는 척 말 한 친구가 넌덜머리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사 사람?"

 주현의 질문에 회사 그만 둘 거라고 말하던 친구가 바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아니, **끼들이 뒷담 *나 까. *나 친한 척하는 *끼들도 돌아서면 *나 깐다니까?"
 "……."
 "아니, 차라리 뒷담만 까면 상관없는데, 지들끼리 얘기하고 *나 꼽주는 *끼가 하나 있거든? 개 **끼. *발."

 그 말에 술 따라주던 친구가 말했다.
 
 "야야, 그건 어디든 그럼. 군대에서도 그런 *끼들 있었잖음? 우리 과 학회에도 그런 *끼들 있고, 내가 알바 하는 데도 있음."
 "어? 너 알바 해?"

 주현이 처음 듣는 소식에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응. 나 휴학하고 뷔페에서 서빙함. 저녁때는 자격증 학원 다님."
 "몰랐네……."
 "지금 처음 얘기하는 거임."
 "아.

 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입 한 번 안 떼고 안주만 계속 집어 먹던 친구가 말했다. 그는 과거에 주현의 짝이었고, 주현이 욕조에 잠길 때 연락이 왔었던 친구였다.

 "대학원 다니는 선배도 그 말하는 거 들었어. 그런 인간들은 어딜 가나 있다고. 인간의 본성 같은 거 아니겠나 싶다. 너도 참 많이 힘들 텐데 어쩌냐……. 일 하느라 고생이 많다."
 "하……."

 안주 집어먹던 친구의 말에 직장 그만 둘 거라던 친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때 전자담배를 피우고 온 친구가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넌 대학원 얘기 꺼내지도 마."
 "아, 그런 거 아냐."
 "저 자식 지금 대학원 빌드업 하는 거야."

 그 말에 주현이 안주 먹던 친구를 보며 물었다. 

 "대학원 가게?"
 "그냥 생각 중이야. 교수님 하고 전에 한 번 얘기해 본 적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데 전자담배를 피고 온 친구가 대학원 고민하는 친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한 번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 말에 주현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너 학창시절에 공부 싫어했던 것 같은데……."
 "아니, 뭐 대학 공부랑 다르기도 하고……. 중고등학생 때 하는 거랑은 다른 분야기도 하고, 아무래도 가게 되면 연구 위주니까……."

 대학원 고민하는 친구의 말에 전자담배 피우고 온 친구가 말했다.

 "쟤 이미 이미 반 쯤 넘어갔어."
 
 그 때 다른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야 벌써 다 모였냐!"
 "애 아빠 왔음."

 뷔페에서 서빙한다는 친구가 수저를 더 꺼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 말에 주현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너 얼마 전에 결혼한 거 아니었어? 벌써 애가 태어났다고?" 

 그 말에 직장 그만 둘 거라던 친구가 말했다.

 "아, 못 들었냐? 쟤 사고 쳐서 빨리 결혼한 거임."
 "아직 애가 태어난 건 아니고, 와이프 임신 중이야."

 친구가 오해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그 말에 주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시간에 나와도 되는 거야…?"
 "네 핑계대고 잠깐 나왔지. 네 싸인 받아오겠다고 했거든. 와이프가 송즈 좋아해."

 아내가 임신 했다는 친구가 주현을 위해 가져온 선물이 든 쇼핑백 속의 앨범과 펜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는 수저를 받아 들어 음식을 입에 재빨리 집어넣으며 말했다.

 "온 김에 밥 먹고 갈거야."
 "천천히 먹어."

 주현이 싸인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입에 음식을 욱여넣으며 말했다.

 "빨리 먹어야 돼."
 "왜? 빨리 들어오래?"
 "마트에 과일 사가기로 했어. 문 닫기 전에 사야지. 그리고 입덧이 아직 있거든. 그러니까 지금 빨리 먹어야 돼."
 "근데 왜 네가…?"
 "와이프는 못 먹는데 나만 먹기 미안해서 집에서는 나도 잘 안 먹거든. 여기 온 김에 먹는 거지."
 "아하, 그래서……. 근데 그래도 너는 먹어야지."
 "음식 냄새만 나도 속 안 좋다는 데 어떻게 그래."
 "아이고. 심하나보네. 와이프 성함이?"
 "ㅇㅇ."
 "ㅇㅇ? …여기. 감사하다고 전해 줘."

 주현이 싸인과 함께 친구 부부를 위한 메시지도 적어서 앨범을 건넸다. 그러자 친구는 마지막으로 음식을 한 입 더 입에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 나 간다!" 
 
 친구는 아직도 입에 든 것을 씹으며 재빨리 마트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 사이 뷔페에서 일 한다는 친구가 주현이 받은 선물인 쇼핑백 안을 관심 있게 기웃거리며 물었다.

 "뭐 받음? 쟤가 산 거임? 도넛 베개?"
 "너 머리 다쳐서 줬나 봐. 아, 맞다. 너네 걔 알아? ㅇㅇㅇ?"

 대학원 간다던 친구가 말했다.
 직장 관둔다던 친구가 기억을 하고 물었다.

 "ㅇㅇㅇ? 그 여자반에?"
 "응. 나 걔 ㅇㅇ병원에서 봤어. 걔 간호사 됐더라." 
 "ㅇㅇㅇ이 간호사가 됐다고? 사자후로 사람 고막 터뜨려서 병원 실려가게 만든게 아니고?"

 목소리가 큰 동창이었는지 직장을 관둔다던 친구가 질색을 하며 말했다.

 "진짜 다들 예상치 못하게 산다……."

 주현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문득, 이젠 다들 어른이 된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현은 젊은 날에 멈추지 않고 늙어가는 친구를 볼 수 있는 건 축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 때 주현의 말에 전자담배를 피우고 온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그 말을 하냐? 제일 예상치 못한 일 하는 놈이?"
 "아니 난……."
 "난 네가 씻다가 뒤로 넘어져서 머리 깨졌다는 게 제일 놀랍다."
 "하하……."

 진실을 숨긴 주현이 눈을 못 마주치고 괜히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대학원 고민하는 친구가 그런 주현을 빤히 바라보다가 손목을 힐끗 봤다. 그리고 시선을 피하고 있는 주현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일부러 애매하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괜찮고?"



 "그래서, 이제 괜찮고?"

 팬의 어머니가 물었다. 이들은 예전에 드라마 야외 촬영을 위해 묵었던 숙소에서 도움을 줬던 팬과, 팬의 어머니였다(그리고 스토커들의 행태를 고발한).

 "네. 머리 다친 곳은 이제 괜찮아요."

 주현과 같이 온 막내 멤버가 주현을 대신해서 재빨리 대답했다.
 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으로 시선을 피해 떨궈버렸다. 이 자리는 주현과 막내 멤버가 같이 마련한 팬과의 점심 식사 자리였다.

 하지만 팬과 어머니의 눈은 주현의 손목 보호대에 가있었다. 그들은 어쩐지, 사정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하지 않았다. 팬은 차분하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눈으로 좇았다. 주현은 괜히 머쓱하게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 이건 아, 안무 연습하다 다친 거라……."
 
 더듬거리는 주현을 빤히 쳐다보던 주현의 팬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결심한 듯, 목소리를 낮춰 작게 말했다. 방이라서 이들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지만, 그래도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 날 저희가 왜 도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네?"

 주현은 고개를 들어 팬을 바라봤다.

 "엄마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저는 단순히 주현씨의 팬이라서나 송즈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운 건 아니에요."

 팬은 그렇게 말하고 수저를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팬의 어머니는 잠시 그런 자녀의 모습을 흘끗 봤다가 수저를 내려놨다. 
 주현과 막내 멤버도 가만히 수저를 내려놓고 경청한다는 자세를 취했다.
 팬은 말 하는데 용기가 필요했는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말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 같았거든요."
 "……."
 "먼저 떠난 사람이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침묵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들 안다는 걸 증명했다.
 팬은 담담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였어요."
 "……."
 "저는 남겨진 기억을 붙잡고 매일 돌려보며 후회 속에서 살았어요. 그 날,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랬기 때문에 뭐라도 하고 싶었고요."

 팬이 차분하게 말하고는 다시 물을 마셨다.
 주현은 그런 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 하지 마요. 죄책감 가지지도 말고요."

 주현은 부모님께도 똑같이 들었던 말을 듣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좀 정리되고 차분해진 톤으로 팬에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주현의 말에 팬도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다른 멤버들이 스케줄을 떠나고, 집에 돌아온 막내 멤버와 주현이 저녁으로 백반을 먹던 중이었다. 주현은 막내 멤버의 뜬금없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응? 뭐가?"
 "그냥. 다."

 막내 멤버는 그렇게 말하고는 밥과 반찬을 입에 욱여넣었다.  
 가만히 막내 멤버를 보던 주현이 젓가락으로 자신의 고기를 들어서 막내 멤버에게 덜어주며 말했다.

 "…더 필요해?"

 막내 멤버가 고기를 다시 반납하며 말했다.

 "아니."
 "그럼 뭐야?"
 "내가 너무 늦었어. 미안해."
 "뭘?"
 "형, 내가 많이 사랑해."
 "뭐야?"

 주현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행동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물었다.
 
 "형이 다시 눈 뜨면 하고 싶었던 말을 지금 한 거야."
 "……."
 "깨어나면 꼭 얘기할 테니까 제발 살아있어 달라고 기도했거든. 약속 지키고 있는 거야."
 
 주현이 말 없이 가만히 있는데, 막내 멤버는 대수롭지 않게 듯 밥을 먹었다. 그러더니 주현을 보며 말했다.

 "형, 내일 스케줄 없지? 내일 나랑 놀러 가자."



 "놀러 가자더니?"

 춤 담당 멤버가 등산로 입구에 서서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막내 멤버가 주현과 춤 담당 멤버에게 물을 한 병씩 쥐어주며 말했다.

 "여기 좋아! 경사도 완만하고,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이랑 파전도 먹을 수 있고!"
 "이건 고문이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체력 짱짱한 너나, 건물 뛰어 넘어 다니는 형한테나 즐거운 거지! 난 산 탈 체력이 없다고~"

 춤 담당 멤버의 찡얼거리는 말에 막내 멤버가 옷매무새와 가방에 빠진 게 없는지 점검하며 말했다.
 
 "형은 너무 정적인 취미만 한다니까."
 "일이랑 취미는 원래 반대가 많잖아~? 취미는 좀 정적일 수도 있지~"

 그 말에 주현이 춤 담당 멤버에게 물었다.

 "너 취미가 뭐였더라? 예전에 방에서 기타 치는 소리는 들었는데."
 "저요? 요즘은 크로키~"
 "크로키? 왜?"
 "춤 동작 생각나는게 있을 때 영상으로 못 찍어놓는 상황이 종종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려두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 말에 주현이 이해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멤버가 채비를 끝내고는 이제 산을 올라가자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ㅇㅇ(멤버 이름)형은 요즘 방에서 수학 문제 푼데요."
 "걔 드디어 미쳤나???"

 춤 담당 멤버가 산을 올라가기 시작하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막내 멤버가 말했다.

 "ㅇㅇ형 말로는 지금부터 공부해서 나중에 대학 다시 갈 거라던데요. 공대 가고 싶다던가…?"
 "되겠냐~?"
 "한 30살때쯤 됐을 때가 목표래요."
 "우리 멤버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 특이할까~?"

 춤 담당 멤버의 말에 주현이 물었다.

 "딴 애도 수학 푸는 애 있어?"
 "그건 아니고요~ ㅇㅇ(사진 찍힌 멤버)이도 요즘 방에 틀어박혔잖아요~"
 "걔 요즘 뭐 하는 데?"
 "애니메이션 종류별로 죄다 정주행한다더라고~"

 그 말에 막내 멤버가 중얼거렸다.

 "실연의 아픔이 컸나……. 2차원의 세계로 가버렸네."
 "ㅇㅇ(다른 멤버 이름)이는 요즘 축구단 나간다고 바빠 보이고~"

 듣고 있던 주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째 한 그룹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 제각각인지 모르겠어. 각자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저마다 살아가는 삶도 다르고."
 "같은 사람이 아닌데 같겠어요? 다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게 당연하죠."

 막내 멤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춤 담당 멤버가 벌써 거칠어진 호흡으로 힘겹게 말했다.

 "난 그래도 다들 뭐 하나씩 하는 거 좋아~ 그냥 있으면 외롭고 그런데 이렇게 도피처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춤 담당 멤버의 말에 주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있으면 외로워?"
 "아무래도 그렇죠~? 우리가 뭐 어디 사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휴일이 정해져 있길 하나, 생활 시간이 보통 직장인들 하고 비슷하길 하나~ 남들 쉴 때 일하고 있으면 가끔은 현타 온다니까요~?"
 
 숨 넘어갈 듯 헉헉거리며 말하는 춤 담당 멤버의 말에 막내 멤버도 말을 보탰다.

 "가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도시 속에 나만 뚝 떨어뜨려 놓은 것 같다니까? 창 밖에 보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연휴나 국경일날은 더 그래요. 온 세상이 축제인데, 난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어."
 "맞아맞아~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다들 각자의 도피처에 갇힌 거지 뭐~ 살다가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도피처~"

 그들의 말에 주현은 미경이 한 말이 생각났다.

 '다들 그렇구나……. 정말 이렇게 다른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주현은 문득, 다들 자신이 보는 곳만 보고 사는 고립된 등대 같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막내 멤버가 물었다.

 "형은 취미 뭐예요?"
 "맞아~ 형은 따로 뭐 하는 거 못 본 것 같아~"
 
 춤 담당 멤버가 산행 때문에 힘들어하며 겨우겨우 말을 했다.
 그 질문에 주현은 당황했다.

 "나? 취미?"
 "형의 도피처."

 막내 멤버가 산을 쑥쑥 잘 오르며 말했다. 그들의 속도를 따라잡느라 춤 담당 멤버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매우 헉헉거리고 있었다.

 "내 도피처……."

 주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 없이 생각하며 산을 오르다가 말했다.

 "…나는 딱히 도피처 될 만한 게 없어."

 그 때 춤 담당 멤버가 약간 뒤처져서 좀비 같은 몰골로 요청했다.

 "헉헉 쉬었다 가요……."

 그 말에 주현은 평지를 걷다가 멈춘 것 마냥 멀쩡한 모습으로 우뚝 멈춰 섰다.
 막내 멤버도 제법 땀을 흘려서인지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가져온 물병을 열었다. 춤 담당 멤버는 거의 빈사 직전의 모습으로 넓적한 돌 위에 주저앉았다.

 "너 다시는 나한테 산행 가자고 하지 마라……."
 
 춤 담당 멤버가 막내 멤버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형. 지금 봐 봐. 이건 형이 춤 말고는 너무 안 움직여서 그래. 주현이 형은 멀쩡하잖아."
 "야, 너는 비교를 해도 이 형이랑 비교를 하냐~!?"

 춤 담당 멤버가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내 멤버가 주현에게 물었다.

 "형, 어때요? 새 도피처가 될 만해요?"
 "응?"
 "도피처가 없다면서요. 새로 만들면 되잖아요, 새 취미로."
 "아."
  
 주현은 막내 멤버의 말에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네? 새로 만들면 되겠다."
 "그럼 등산은 취미로 합격?"
 "그건 일단 정상까지 가보고 생각 해볼게."

 그 말에 춤 담당 멤버가 질색하며 말했다.

 "아, 난 더 못 가요! 둘이서 갔다와요!"
 "형, 우리 등산 30분도 안 했어……."
 "이런 미친 속도로 등산 하니까 문제지! 아니, 이 형은 봐 봐~ 지금 땀도 안 흘려! 주현이 형, 솔찍하게 말해 봐요. 지금 운동되긴 해요~?"

 그 말에 주현은 잠시 주저 하다가 말했다.

 "…솔찍히 말하자면 점프 좀 해서 산 정상까지 바로 갈 수도 있어."
 "와, 미쳤나봐~ 그럼 그 물 나 줘요."

 춤 담당 멤버가 그렇게 말하고는 주현이 손에 들고 있던 물을 가져갔다. 
 주현이 춤 담당 멤버에게 물었다.

 "많이 힘들면 업어 줄까?"
 "아니 그건 좀……. 내 쪽팔림은 둘째 치고, 형 허리랑 무릎 나갈 걸요~? 아, 아닌가? 괜찮으려나?"
 "너만 괜찮으면 난 괜찮아. 난 너 들쳐 매고 점프 해서 산 정상까지 갈 수도 있어. 산이 좀 울리긴 하겠지만."

 묘하게 디테일한 말에 막내 멤버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거 경험담 같은데. 형, 해봤죠?"  
 "정상까진 아니긴 한데, 멱살 잡고 산에 메다꽂아본 적은 있어."

 그 말에 춤 담당 멤버가 물 마시다 뿜으며 말했다.

 "미친."



 "미친."

 드라마 홍보 때문에 방문한 유튜브 채널의 스텝이 화장실에서 욕을 내뱉었다. 

 "개짜증나. 쟤 비중도 거의 없다던데."
 "드라마에 아이돌 꽂아 넣기 유구하자나?" 
 "ost 그거 중간에 엎어졌었다는 얘긴 들었어?"
 "아니?"
 "아무래도 걔가 한 게 맘에 안 들어서 엎은 게 아닐까 싶다니까."
 "아 그럴려나?"
 "자기가 작사 작곡 한 부분 있다던데 진짜 할 수 있긴 한 지 몰라? 그냥 이름만 올렸을껄."
 "다 그렇게 하자나? 대충 흥얼거리고 이름 띡! 올려놓는 거."

 그들은 옆의 남자 화장실에서 주현이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뒷담화를 했다.

 "아씨 진짜 개 짜증나. 오늘 쉬는 날인데 왜 하필 오늘 와갖고 이 개고생이냐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당……."
 
 주현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생각했다.

 '저 사람의 도피처는 뒷담이고 집이구나.'

쏴아아

 주현이 손을 씻자 옆 화장실에서 말소리가 멈추더니 그들은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뒷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딜가도 저러네. 딴 데 가서도 저러겠지.'

 주현은 손을 말리며 한숨을 쉬었다.

 '저들도 등대구나.'

 그 생각이 들자 이제 그들에게서 아예 신경을 아예 끄기로 결정했다. 



 "3주연속 차트 1위 하셨습니다! 요즘 시대는 일주일 이상 1위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반응이 장난 아니에요! 대박 난 소감 한 말씀해주시죠!"

 드라마도 주현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드라마 ost도 대박이 났다. 주현은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청됐다.

 "우선 감사드리구요. 드라마가 대박 나서 노래가 더 사랑받는 것 같아요.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주현은 라디오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곡을 만드는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녹음 비화라던가, 드라마 참여기 등등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라디오 부스 밖에서 매니저가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노래가 나오는 시간이 되었다. 주현은 물 마시는 척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그냥……. 별 일 아냐."
 "형, 지금 이상한거 보이거든요? 빨리 말 안 해요?"
 "또 다른 로봇이 나타났대."
 
 매니저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주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에요?"

 주현이 바로 나서려 하자 매니저가 만류했다.

 "아냐, 안 가도 돼. 마침 다이아가 와있어서 갔대."

 다이아는 이제 완전히 회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현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다이아한테만 맡겨둬요? 제가 가서 도울게요."
 "하…….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매니저는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현이 굳이 자발적으로 나설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려봤자 말 안 듣는 녀석인 것도.
 주현이 시계를 찾으며 말했다.

 "방송 얼마나 남았죠? 중간에 갔다 올까요?"
 "진정해. 이제 라디오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끝나고 바로 가면 될 것 같아."

 매니저가 휴대폰 시계를 주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주현은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이제는 거리낌 없이 김두원에 대해 말했다.

 "박사님이 연락은 하셨대요?"
 "경찰에?"
 "네."
 "아마 형사님한테 따로 전달하셨을걸."
 "혹시 모르니까 박사님한테 확인해 주세요."

 이제 주현은 김두원과의 신뢰 관계를 완전히 회복한 모양이었다.

 "다시 들어가실게요~"

 라디오 작가의 말에 주현은 다급히 라디오 부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사건이 난 곳으로 출발했다.

 

 먼 옛날, 폭발과 화재로 인해 그을린 자국이 역력한 공장. 백일제약이라는 글자는 다 철거됐지만, 공장지대 주변인들은 다 그 공장 건물의 소유를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다이아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서너 기의 로봇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이아는 좀 더 개량되서 강해진 로봇을 발로 차서 벽에 처박았다.  



 "으아아!" 

 수업을 째고 공장 안에서 숨어서 몰래 담배 피우러 들어온 양아치 학생 한 무리가 나가려다가 로봇 팔에 맞을 뻔했다.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가까스로 피했다. 학생들은 다급히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로봇은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빠른 속도로 공격하려 했다.

 "멈춰!"

 다이아가 학생들에게 소리치고는 재빨리 학생들을 공격한 로봇에게 돌진했다.



 로봇은 다이아의 공격을 맞고 벽에 처박혔다.

끼긱끼긱

 하지만 이내 로봇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다이아는 모국어로 중얼거렸다.

 "관절 약하다더니 보강했잖아? 핵 있는 부분 보일 거라더니 보이지도 않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멈추는 거야?"

쉬익



 그때 철근 하나가 날아와서 로봇에 꽂혔다.

 "어어! 뭐야!?"
 "주현!?"

 학생들이 주현을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잠깐만 조용히 있어주면 고맙겠어."

 주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공장 안 쪽으로 들어왔다.

 "오빠! 와도 괜찮아?"

 다이아가 주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이제 괜찮아."

 주현은 그렇게 말하며 거추장스러운 듯 손목 보호대를 풀었다. 이제 손목에는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손에는 다이아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툭 

 손목 보호대가 바닥에 떨어졌다.

콰앙 콰앙 콰앙

 굉음을 내며 로봇이 찢겨졌다. 

 "지린다……."

 양아치 학생들은 그 모습을 직관하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주현이 한껏 밝아진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학생들이 조폭처럼 몸을 숙이며 소리쳤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송즈 노래만 들을게요!"
 "ost 맨날 듣겠습니다!"
 "저희의 은인이십니다!"

 그들의 반응에 주현은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무슨 조폭도 아니고……."
 "주현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주현은 부담감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됐고, 그냥 오늘 일은 모르는 척 해 줘요. 비밀리에 활동하는 거니까."

 그러자 학생들이 또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예 형님! 비밀 엄수 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현님!"
 "감사합니다, 은인님!"

 주현은 이제 그런 학생들의 모습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다이아와 함께 공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말했다.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이런데 다시는 오지 말고." 
 "이제 얼씬도 안하겠습니다!"

 그때 차 두 대가 미끄러지듯 공장 앞으로 다가왔다.
 미경이 앞 차에서 내렸다.
 주현이 미경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형사라는 말에 학생들은 제발이 저린 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뭐야 왔네? 시간 안 될 것 같다고 들었는데."

 미경이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뒷 좌석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뒷 차에서는 이지훈 형사가 내려서 다가왔다. 그리고 학생들은 인계해서 차에 태우며 훈계를 시작했다.

 "너네 여기서 담배 폈지?"
 "안 피웠어요!"
 "냄새 다 난다."
 "……" 
 "학교에 있을 시간에 나와서 몰래 이런 데 다니니까 죽을 뻔 했잖아, 어? 이 형이랑 얘가 구하러 못 왔으면 너네 그냥 죽어서 한참 뒤에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었다고. 알아?"
 "……."
 "잘못 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이 쪽 한테 고맙다고 하고." 
 "고맙습니다." 

 주현과 다이아는 감사 인사를 받으며 학생들에게 손 인사를 했다.
 미경은 학생들이 탄 차 문을 닫고는 주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예전에 내가 약물 때문에 젊어진 곳이야. 백 전 회장이 죽은 곳이기도 하고."
 "어? 여기가요?"

 미경의 말에 주현이 놀라서 뒤돌아서 폐공장을 다시 살펴봤다. 
 미경은 상념에 잠겨 공장을 보며 말했다.

 "나도 죽을 뻔 했지만."
 "……."
 "다 나았어?"

 미경이 주현의 팔목을 흘끗 보고는 물었다.

 "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요. 이제 깨끗하게 다 회복했죠."

 주현이 손목을 들어 보이며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런 주현의 말에 미경은 살짝 웃고는 다시 차에 타러 가며 말했다.

 "들어가 봐. 난 갈게. 저 안에 것들은 좀 있다가 조사단 와서 수거해 갈 테니까 걱정 말고."
 "네네."
 "아, 얼마 전에 바다에서 발견했던 것도 수거했어. 지금 조사중이야. "

 미경이 목소리를 낮춰서 정보를 알려줬다.
 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과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너도."

 차 두 대가 가고 나자 다이아가 삐진 얼굴로 물었다.

 "오빠한테는 형님이라고 하는데 왜 나한테는 형님이라고 안 해 줘?"
 "하하. 그러게."

 다이아의 말에 주현이 웃었다. 

 "로봇들이 혹시나 또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줄 수 있으니까 한 번 더 살펴보고 가자."

 주현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폐공장 안으로 들어가 살피기 시작했다. 주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로봇들을 살피는데, 그 모습을 다이아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가 한결 능숙해진 언어 능력을 뽐내며 말했다.

 "오빠."
 "응?"
 "기뻐 보인다."
 "어? 나?"
 "당연한 것처럼 여유롭고 당당해 보인다."
 "내가?"
 "오빠는 다른 사람 돕는게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다."

 또박또박 짚어주는 다이아의 말에 주현은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얼굴을 만져봤다. 정말로, 아까부터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묘한 고양감까지.

 "…도피처."

 주현은 자신의 도피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다. 주현을 제외한 아이들은 다들 기말고사가 가까워졌다.

 "전 수능때까지 부르지 말아 주세요."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날 저녁, 수현이 김두원이 있는 곳에 와서 에어컨을 쐬며 공부하다가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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