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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학생의 우상 본문

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3부. 학생의 우상

SooyangLim 2022. 12. 8. 19:02

 바람이 차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한겨울 밤. 밀 메이커가 달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밀 메이커가 달력을 교체하며 중얼거렸다.

 "내년 달력을 구해서 다행이네."

 고양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벌써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옹."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이었다. 밀 메이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올 해도 몇 시간 안 남았네. 어딘가에는 1월 1일인 곳도 있겠지만. 사실 우주 시간으로 따지면 새해는 이미……."
 "연말은 즐거운 날이다옹."

 고양이가 중얼중얼 길어지는 밀 메이커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고양이의 말에 밀 메이커가 고양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고양이는 기쁜 표정으로 리모컨 쪽으로 가며 말했다.

 "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 날이다옹!"

 고양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켰다. 고양이는 연말 무대에서 샤인 데이를 볼 생각에 설레는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버튼을 몇 번 꾹꾹 누르자 채널이 돌아가더니, 연말 음악 방송 무대가 나왔다. 무대에서는 송즈라는 그룹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샤인 데이랑 소현, 송즈, 포르투나가 특별 콜라보 무대를 한다고 광고를 하는 걸 봤다옹! 기대된다옹!"

 고양이가 요즘 대세인 남녀 솔로가수, 보이그룹, 걸그룹 이름을 언급하며 말했다.
 하지만 밀 메이커가 다가와서 리모컨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지금은 딴 거 보고, 나중에 재방송으로 결제해서 보자. 오늘은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는 날이야."
 
 그렇게 말하며 밀 메이커는 채널을 돌렸다. 밀 메이커는 다른 집에는 나오지 않는 채널로 돌리며 말했다. 

 "다큐멘터리."
 "또 다큐멘터리냐옹? 손님이 오는 거랑 다큐멘터리랑 무슨 상관이냐옹?"
 "손님의 취향에 맞춰주는 거지. 내 취향도 약간은 반영되어 있지만."
 "하여간 재미없는 인간이다옹."

 고양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텔레비전에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우펜자의 비밀이 방영됩니다.」

 밀 메이커가 리모컨을 바닥에 내려놓는데-

띵동

 벨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놀라서 대문 쪽을 바라봤다.

 "뭐냐옹!?"

 밀 메이커는 집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마당 밖 대문이 아닌 집 문이 열렸다. 마당 문은 이미 열어놓은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문 앞에는 머리카락이 짧고 발이 큰 학생이 가방을 등에 매고 서 있다. 예전에 늦은 밤, 학교에서 고양이를 잡아 준 학생이었다. 그리고 머리 색이 어색하게 밝은 갈색인 학생의 친구가 밀 메이커에게 시계를 전달할 때 얘기해 준 그 친구였다. 그리고 친구가 본인 얘기를 밀 메이커에게 전한 직후에 잠시 밀 메이커의 집에 들어와서 인사했던 그 학생이었다.

 학생은 기온 차이 때문에 학생이 숨 쉴 때 마다 흰 연기 잔뜩 피어올랐다. 학생의 코, 볼, 손 끝이 추위 때문에 붉게 얼어붙어 있었다.  
 밀 메이커는 그런 학생을 보고는 말했다.

 "날이 추워서 안 올 줄 알았는데……. 시간도 늦었으니 그냥 다음에 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서 지금이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죠."

 학생이 밀 메이커의 말에 단호하게 말했다.
 밀 메이커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연말 12시면 차라리 친구들이랑 첫 술을 마시는게 좋은 시기 아닐까요?"
 "그게 몰래 딴 길로 새기에는 좋은 핑계 아닐까요?"

 학생은 물러날 기세가 없었다.
 밀 메이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말도 안 하고 딴 길로 새면 부모님이 안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새해 첫날부터 술 마시는 것보다는 낫겠죠."

 밀 메이커의 세번째 회유에도 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밀 메이커가 문고리를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아닐껄요?"
 "맞을걸요?"
 "…일단 들어오세요."

 결국 밀 메이커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고양이는 놀란 눈으로 뒤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는 학생을 바라봤다.

 "고양이, 안녕?"

 학생은 집 안으로 들어오며 고양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학생을 보며 고양이는 놀란 얼굴로 멀뚱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전에 왔던 애 아니냐옹? 쟤는 여기 또 왜 왔냐옹? 이 시간에 왜 온 거냐옹?"

 학생은 그런 고양이의 말이,

 "야옹. 야옹. 야옹."

 으로 들렸다. 학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귀여워."

 밀 메이커는 자신의 방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들어가서 앉아 있어요. 차 한 잔 가지고 갈게요."
 
 학생은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차를 준비하는 밀 메이커에게 물었다.

 "쟤 뭐냐옹? 이 시간에 왜 온거냐옹?"
 "고민상담하러 온 꼬맹이. 성인이 되자마자 먹을 수 있는 첫 술을 마다하고 온 거야. 물론 12시 되자마자 내가 술을 줘도 되지만, 난 안 줄 거야. 알아서 찾아 먹을 녀석이거든."

 밀 메이커의 말에 고양이의 얼굴 표정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바꼈다.

 "고민상담? 너한테 고민상담 할 게 뭐가 있냐옹? 그런 거 할 수나 있냐옹?"

 고양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양이는 다른 것보다 밀 메이커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는 사실이 가장 경악스러운 듯 했다.
 밀 메이커가 뜨거운 물을 부으며 말했다.

 "섭섭하네. 할 수도 있지."
 "혹시 늙음에 대해서 토론이라도 하러 온 거냐옹?"
 "몇 시간 뒤면 인간 나이로 성인이 되는 애가 무슨 늙음을 토론한다는 거야."
 "그럼 비 오는 날 앓는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토론?"
 "인간은 그런 걸 토론하러 이 시간에 오지 않아."
 "그럼 흉흉함?"
 "난 밝고 명랑해."
 "무슨 고양이가 초식동물이라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옹."
 "그건 말도 안 되지만 밝고 명랑한 건 진실이야."

 이상한 만담을 나누며 밀 메이커는 우러난 찻잎을 걸러서 찻물을 머그컵에 담았다.

 고양이와 밀 메이커가 만담을 나누는 사이 학생은 밀 메이커의 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학생은 방 안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학생은  신기하고 이상한 물건이 많은 방 안을 구경했다. 밀 메이커의 방안은 서재 같기도 하면서 이상한 실험실 같기도 했다.

 "밖에 많이 춥죠? 이제 곧 졸업한다고 했던가?"

 밀 메이커가 연기가 풀풀 나는 머그컵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 고양이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아, 네.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학생이 컵을 받아들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밀 메이커는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듯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래도 되겠어요?"
 "네. 편하게 하세요."
 "알겠어. 그래, 학생의 친구가 고민상담을 하고 싶어서 날 보자고 말 전해줬는데… 맞나?"

 그렇게 말하며 밀 메이커는 책상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어색한 연갈색 머리인 친구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밀 메이커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물어볼 것도 있다고?"
 
 학생은 대답 없이 자신의 가방에서 책을 두 권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우펜자」
「찢어진 우주의 낡은 신화들」

 우펜자의 자서전과 고양이가 찢어먹은 책이었다. 두 권 다 우펜자가 저술한 책이었다.

 "이 책 주인이시죠?"

 밀 메이커는 책상에 올려진 책을 잠깐 봤다가 다시 학생을 바라봤다. 학생은 책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이 책을 도서관에 놔두셨던 거 아닌가요? 저에게 원하시는 게 뭐죠?"
 "…확신하는 이유가 뭐지?"

 밀 메이커의 물음에 학생이 말했다.

 "제 친구, 안다미, 그리고 도서관 관장…….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당신이 있더라고요. 제 생각엔 당신이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대화를 하러 왔고?"
 "대화……. 대화라. 글쎄요. 대화라기 보단 해명을 들으러 왔다고 하는 게 맞겠는데요."

 학생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딱이며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밀 메이커를 노려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물끄러미 학생을 바라보던 밀 메이커가 말했다.

 "당돌해져서 좋네."
 "이 정도면 예의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쌓인 게 많구만."
 "그렇진 않고. 그냥 궁금한 게 많은 것 뿐이죠."

 고양이가 밀 메이커의 방문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밀 메이커는 한숨을 쉬고는 요즘 시대에는 쓰지 않을 것 같은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학생은 그 시계를 보자 예전에 봤던 시계임을 알아보고는 약간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아직도 이 사람이 갖고 있네?'
 
 학생은 그 시계를 본 적이 있었다. 학생은 그 시계가 자신의 친구가 주인인데, 밀 메이커가 잠시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잠시 이 집에 들렀을 때 밀 메이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밀 메이커가 말했다.

 "그래, 좋아. 알겠어. 더 늦출 수가 없군. 얘기 하는 게 좋겠어. 근데 그 전에-"



 그 순간 땅이 울림과 동시에 굉음이 들렸다.

 "뭐, 뭐냐옹!?"

 고양이가 놀라서 소리쳤다.
 학생도 놀라서 소리가 두리번거렸다.
 밀 메이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지금 선약이 있거든. 조금만 있다가 다시 얘기해도 될까?"
 "아, 네. 뭐……."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방 밖으로 나갔다.
 밀 메이커가 거실의 텔레비전 앞으로 가서 리모컨을 만지며 말했다.

 "잠시만 텔레비전 보고 있어."
 "아, 네."

 학생은 어색하게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텔레비전에는 다른 집에는 나오지 않는 채널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채널에서는 학생이 생전 처음 보는 언어로 방송하고 있었는데, 밀 메이커가 리모컨을 만지니 학생의 모국어로 변했다.

 '어?'

 학생은 멈칫했다. 그리고 놀란 기색이 역력한 채로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았고, 고양이는 그런 학생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밀 메이커는 리모컨을 바닥에 내려다 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학생은 이내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팬이 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방송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학생이 본 책의 저자에 관한 방송이었다.

 밀 메이커의 집 텔레비전에서 다큐가 방영되고 있었다.

「은하 독립과 해방의 영웅 우펜자, 그의 헌신과 행적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서거 후 발간된 폭로에 가까운 그의 자서전으로 더욱 상세히 알 수 있죠.」 

 안경을 낀 사회자가 옆의 책상에 우펜자의 자서전을 갖다 놓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구구절절 상세한 기록 가운데 딱 한 부분! 바로 2장, 그의 학위 수여 직전 떠난 해외 유학 시절 갑자기 왜 다시 돌아오게 됐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는 말이 없습니다.」

 사회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가 겪은 사건들의 다른 원인은 그렇게 자세히 써놨으면서, 유독 그 시기만은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짧게 언급한 채 끝이 납니다.」
 
 사회자는 우펜자의 자서전을 집어 들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도서관에 어떤 힌트를 남겨놨다고 했습니다.」

 사회자는 우펜자 책의 표지를 화면에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나 구레아는 전쟁으로 도서관의 많은 부분을 소실했습니다. 우펜자 사후 많은 발간된 이 자서전을 본 후 많은 이들이 찾아보았지만 어떠한 힌트도 찾지 못했습니다.」

 사회자는 진중하게 말했다.

「이에 다수의 설이 있지만 크게는 4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사회자가 네 손가락을 보이며 말했다.

「첫번째는 도서관이 소실 되었기에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서 짧게 넘어갔다는 설. 두 번째는 기억이 잘 안났을 것이라는 설. 그러나 그 외 다른 부분은 너무나 구구절절 적었기에 신빙성이 없죠.」

 사회자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 됐다.

「세 번째는 별 일이 아니라서 짧게 적고 넘어갔다는 설. 이 설은 우펜자가 '결정적으로'라고 언급했기에 역시 신빙성이 없습니다.」

 화면은 마타마이니 행성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어리스토 로열 빌딩을 비추는 장면으로 전환됐다. 하단에 빌딩의 이름이 자막으로 나왔다. 

 「네 번째는 우펜자가 '의도적으로' 감췄다는 것. 다수의 학자와 호사가는 여기에 무게를 둡니다.」

 화면은 빌딩의 최상층부 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생전의 그를 아는 이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우펜자는 장수 했기에 대부분 우펜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죠.」

 화면은 이제 안경을 낀 늙은 노인이 앉아있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늙은 노인의 이름이 자막으로 깔렸다.
 
 마틴 어리스토 로열

 마틴 어리스토 로열이 말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구레아에 다녀와서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 하셨었죠.」

 마틴의 말이 끝나자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시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마틴의 아버지 토비아스는 우펜자의 자서전에 자신의 최고의 조력자로 언급된 인물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마틴이 말하는 장면이 다시 이어졌다.

「원래 예정된 기간보다 반 년 더 일찍 구레아에서 돌아왔다고 자서전에도 나옵니다.」

 마틴의 말이 끝나자 우펜자의 생전 모습이 자료화면으로 나왔디.

「아버지는 우펜자에게 물어보면 그저 미소를 띄우고 침묵했다고 합니다.」

 자료화면은 우펜자가 전쟁 중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이었다.
 그 자료화면을 배경으로 마틴의 말이 자막으로도 깔렸다.
 그리고 이제 우펜자의 자서전이 나와서 점점 확대되는 화면으로 전환됐다.
 진행자가 물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군요?」
「아마도요.」 

 마틴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제 화면에 우펜자 자서전의 표지가 가득차게 보여줬다.

 표지에는 11시를 가리키는 벽시계가 걸린 벽 앞에 우펜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평화상과 안경이 놓인 수납함에 팔을 얹어서 기댄 채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른 쪽 손은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그가 평생 들고 다니던 회중 시계를 들고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삑-
 
 고양이가 복실한 털이 난 발로 리모컨 버튼을 눌러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고대했던 연말 음악 프로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니 맘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학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학생이 조용히 입을 뗐다.

 "…죽이는데?"

 학생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호기심 때문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또 그 일이 얼마나 후회할 일로 돌아올지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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