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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2부. 기형 - 래

SooyangLim 2022. 8. 11. 19:01



 호심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그곳은 본부의 카펫이 길게 깔린 곳 옆에 나있는 문이었다.

 "어? 앞에 있었어요?"

 난 다들 문 앞에 대기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괜찮아!?"

 현사월이 내 모습을 보고 내 질문은 묵살하며 달려왔다. 주현이 멀쩡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다.

 "어, 어떻게 서 있는 거야?"

 호심래가 스르륵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 녀석을 치료해라."
 "…당신이 더 심각해 보이는데?"

 주현이 호심래와 나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둘 다 치료하긴 해야겠지."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렇게 말했다. 주현은 다시 문을 닫고 호심래와 나를 치료했다.

 "완전히 나을려면 얼마나 걸리지?"

 호심래가 주현에게 물었다.

 "그건 몇 주, 아니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 완전하게 낫더라도 흉터는 영원히 남겠지만."

 주현의 대답에 호심래가 말했다. 

 "그건 남들이나 그렇고. 난 빨리 낫는다. 하루 이틀이면 나을 거다. 이 소년도 그럴 거고." 
 "참 나. 회복하는데 시간 걸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지.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다고 그런 근거 없는 소릴 하는 거지? 우리가 아무리 제각각 다르다지만 결국에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주현이 콧웃음을 치며 말했다.
 호심래가 가만히 누워서 그 말을 듣다가 말했다.

 "그거 아는가? 이렇게 다르나 싶은 놈들도 모아놓으면 결국 비슷비슷한 거."
 "그게 지금 우리잖아."
 
 주현의 대꾸에 호심래는 가만히 있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장은 무슨 생각일 것 같나?"
 "뭐?"
 "수장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섰어?"

 난 빈정거리듯이 물었다.
 호심래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게 크게 영향을 주긴 했지. 근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
 "왜? 내가 맘에 안 드나 봐?"
 "……."

 내 빈정거림에 호심래는 대답이 없었다.

 "…간부들은 어차피 죽어도 지금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네게 굴복되든 말든 말이다."
 "대단한 자만이네."
 "처음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네가 하는 거 봐서라고 한 말."
 "입만 살아서는. 칼에 찔려 놓고는 말이 많아. 지금 누워 있는 주제에 누가 보면 이긴 줄 알겠네."

 내 빈정거림에 굴하지 않고 호심래는 여전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거다. 네 손에도 피가 묻었다는 거."
 "뭐? 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호심래의 말에 화가 확 치솟았다.

 "먼저 사람을 죽인 건 네놈들 쪽이잖아. 아저씨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여기까진 안 왔어."
 "…뭐가 됐든 복수를 선택한 건 너다. 너는 그 때 복수를 하지 않을 선택지도 있었다. 혹은 다른 식으로 복수를 하거나."
 "뭐? 복수를 안 해?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대체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넌 도대체 내가 호구 새끼인 줄 아냐?"

 나는 욱 해서 말했다.

 "혹은 다른 식으로 대응할 방법도 있었지. 넌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무모하게 덤볐다."
 "뭐?"
 "잘 생각해 봐라. 길선웅과 현사엽을 죽인 놈들을 다른 식으로 벌을 받게 할 방법이 아예 없었는가? 그리고 그게 모든 간부들을 죽이고 간부들의 수하들을 전부 다 몰살시켜야 할 이유였나? 그리고 정확히 누가 죽였는지 확인은 했나?"
 "진짜 머리통 속까지 썩었네. 사람 죽여놓고는 그런 소릴 해? 뭐냐, 대체? 그럼 해결 될 때까지 나는 가만히 있으라고?"

 난 들으면 들을 수록 화가 났다. 난 호심래에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야, 착각 하지 마. 이건 복수가 아니야. 복수는 그날 죽인 놈들을 찾아갔을 때 끝났어. 난 그때 느꼈지. '아 여긴 글러먹었구나. 뿌리부터 썩었다!' 라고. 그리고, 아저씨들을 죽인 일에 대해 추궁하러 간 그 날에 네가 날 막아섰잖아?"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꼴을 하고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뭐?"

 호심래의 말에 나는 기가 찼다.
 호심래는 화가 난 날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 이후에 나는 그날 침묵을 하고 널 막아섰던 일에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날 수장은 그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거기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고. 그래서 난 이제 침묵을 깨고, 지금 널 살리고 돕고 있는 것이다. 침묵의 죄에 대한 속죄로."

 호심래의 말에 난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감이 안 잡혔다. 난 갈수록 짜증과 화가 밀려왔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내가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썩어있다 한들 나는 수장과 네 생각이 과연 옳은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네가 무언가를 바꾼다면 그게 과연 옳은 방향일까? 너 또한 결국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허! 넌 지금 나를 뭘로 보고…?"
 "그래서 지켜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심화되거나 현상유지만 하거나.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 내 눈으로 목도해버렸고."

 호심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묵과 아무것도 안 한 결과, 전부 다 희생되어야만 했으니까. 너의 그 소중한 길선웅도, 현사엽도, 수하들도, 간부도. 그리고 나도 곧 그리 되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나는 그의 가면 너머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감정을 눌러 말했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일어난 일 전부 다."
 "……."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나버렸지만, 미안하다. 나는 지금은 그저 내 잘못을 바로 보고 어찌해야 될지 생각하는 중이다."
 "수습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내 말에 호심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습이라니. 그런 거창한 단어가 가당키나 할까?"
 "뭐?"

 호심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속죄이고 반성이다. 허! 이런 단어조차 입에 담기 무섭군. 정말 과분한 단어다, 과분해……. 어쨌든 단어는 차차하고, 어차피 일어난 죄는 이미 새겨졌다."
 "……."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새겨진 죄는 이제 평생 안고 가야겠지. 그냥 계속 고통받고 반성하는 것으로 속죄가 된다면 차라리 계속 그러기를 원했다. 만회 같은 거창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책임, 아니, 책임이긴 할까?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죄책감조차도 과분한 게 아닐까?"
 "…이제 와서 뭔 소릴 하는 거야?"

 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호심래는 내게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기 전까지 고민했다. 내가 지금 나서는 것이 또 다른 죄가 되는 것은 아닐지, 너와 모든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는 것은 아닐지……. 그게 가장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다."
 "……."
 "지금도 그렇다. 무엇을 더 해야할까? 무엇을 안 해야 할까? 모든 것이 두렵고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여기서부터라도 잘못을 짓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부디 너와 모든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바랄 뿐이다. 내 선택이 언제나 옳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저 노력할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안하다."
 "참 나. 뭐하자는 거야? 집어치워. 기회는 떠났어."

 난 그렇게 말하고 욕지거리를 했다. 
 호심래가 말했다.

 "부탁이 있다."
 "닥쳐. 안 들어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호심래는 말을 이었다.

 "수장을 만나면 수장은 무슨 생각인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수장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글러먹은 거지."
 "수장의 양자들이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호심래의 말에 나는 물었다.

 "수장의 양자들이 이제 내가 상대할 놈들이지?"
 "그렇다."
 "어떤 놈들이야, 그 놈들은?"

 내 물음에 호심래가 말했다.

 "들은 적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수장의 양자들은 총 11명이다. 네가 먼저 만나게 될 양자들은 아마 주발 뒤의 일곱 남매일 것이다."
 "일곱 남매라."
 "아주 강렬할 것이다. 네 생각보다 더. 폭풍 같은 놈들이지. 하지만, 너는 이미 간부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일곱 남매를 상대하는 건 괜찮을 것이다. 108 간부를 제압한 네가 뭐가 무서울까? 문제는 7남매 뒤에 만날 4명의 아이가 문제지."

 아이라는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라고?"
 "그렇다. 그 네 아이들은 아주 온화하고 유약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면 당해내기가 어렵다."

 난 싸우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야만 했다. 난 조심스럽게 그들에 대해 물었다.

 "뭐 어떻길래…?"
 "다들 일곱 남매의 강렬한 힘과 외관만 보고 네 명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네 명의 아이들이 일곱 남매의 말을 잘 따르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결국 일곱 남매도 네 명의 아이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면 일곱 남매는 그 힘을 잃는다."

 호심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뭐 특이한 능력이 있는 거야?"
 "그게 문제다. 그들은 특이하지 않다는 것. 그런데 그들의 능력이 결국 특이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영 종잡을 수 없는 호심래의 말에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게 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길 방법을 연구해야 되는데……."
 "이기려하면 안 된다."
 "응?"
 "일곱 남매라면 몰라도, 네 명의 아이들을 이기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결국 너를 파멸로 이르게 할 것이다. 짧게 보든, 길게 보든."
 "뭔 소리야……."
 "그 네명의 아이들과는 가능한 싸우지 마라."
 "뭐?"

 뜬금 없는 소리에 난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은 굳이 안 싸워도, 네 뜻을 잘 전하면 수장에게 가도록 길을 터 줄 것이다. 회유를 하든, 진심을 전하든. 네 명의 아이들이 네 말을 듣고 그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뜻과 맞다고 여긴다면, 분명 길을 열어줄 것이다."
 "만약 걔들이 생각하는 거랑 내가 생각하는 뜻과 다르면?"
 "그때는 최선을 다해야지. 근데 그때는 나는 네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다고 본다. 그저 최선을 다하도록."
 "참 나……."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일단 자라. 그들을 상대하려면 푹 쉬고 만전을 기해야 된다. 회복을 해야 그들이 또 세력을 모으기 전에 칠 것이 아닌가."

 호심래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바닥에 누웠다.
 나는 앞으로 싸울 상대에 대해 알아낸 것이 영 부족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을 청하려 했다. 

 "잘 자라."

 호심래가 그렇게 말하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눈 감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잠깐 봤다가 말없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일단 신경을 끄기로 했다.



끼익

끼익

 나는 잠결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어?"

 난 소리가 나는 곳을 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끼익 거리는 소리는 천장에 묶인 줄이 흔들거리는 소리였다. 그 줄 아래에는 호심래의 머리가 걸린 채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가면 아래로 혀가 길게 내려와 있었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냄새는 그에게서 흘러나온 온갖 추기에서 나는 냄새였다. 

 마지막 간부 호심래가 죽었다. 내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부의 수장이 앉아있던 의자가 있던 곳 뒤쪽 주발 너머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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