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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1부. 말하는 고양이

SooyangLim 2020. 12. 28. 20:56

 개나리가 막 움트기 시작한 꽃샘추위가 완연한 어느 날이었다.
 주택가에 개나리가 심어진 화단 앞에서 등과 머리에 회색 무늬가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고양이다!"

 그 목소리에 천천히 한쪽 눈을 뜨며 말했다.

"···뭐냐옹?"
"어? 고양이가 말해!"

 아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고양이 앞에는 자신보다도 그리 크지 않은 아이가 서 있었다. 얼마나 어린지 발음도 아직 분명치 않았다.

 고양이는 그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신기한지 아니면 눈앞에 있는 것이 신기한지 감고 있던 다른 쪽 눈도 마저 뜨고 말했다.

 "신기한 꼬마네. 여기서 뭐하냐옹?"
 "어린이집."

 아이가 고양이 앞쪽 길 건너의 유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에 나와도 되는 거냐옹?"

 고양이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멋대로 나온 것이라 생각했는지 살짝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엄마가 어린이집 갈 거래."

 아이의 말에 고양이는 아직 저기에 다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 새로 다닐거냐옹?"
 "응. 근데 못 간데. 엄마가 일해야 되는데 비싸서······."
 "?"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낮은 언어 능력을 가진 탓에 고양이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양이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옹. 대체 뭔 소리냐옹. 이해하기 어렵다옹."

 고양이는 대충은 돈이 없어서 어린이집에 못 간다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딱히 고양이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자기 할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양이 어디 살아?"
 "저기 쟁반달린 집."

 고양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곳에는 다 비슷비슷한 주택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거대한 케이블 쟁반 같은 것이 잔뜩 달린 집이 있었다. 

 그 집엔 어떤 사람이 마당에 막 피기 시작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넌 어디 사냐옹?"
 "난 저기"

 아이는 자신의 뒤쪽에 있는 주택가 건너편을 건물을 하나 가리켰다. 그곳엔 필로티 형식의 신식 원룸 건물이 밀집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이는 행복 원룸 옆의 쉼터 원룸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양이는 어디를 가리키는지 바로 알아보고 물었다.

 "쉼터원룸?"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디선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다야~"
 "엄마?"

 아이가 바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이의 엄마가 부르는 모양이다.

 "이다가 네 이름이냐옹?"

 이다의 엄마가 이다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이다의 옆으로 뛰어왔다.

 "한참 찾았잖아!"
 "엄마, 고양이 고양이!"

 이다가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때 저 멀리서 고양이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야~"
 "이런."

 고양이는 귀찮은 듯 말했다.



 이다의 엄마는 이다를 발견하자마자 뛰어왔다.

 "한참 찾았잖아!"
 "엄마, 고양이 고양이!"

 이다 엄마는 이다를 무사히 찾아서 마음을 놓았다. 이다가 가리키자 그제 서야 고양이가 눈앞에 있는 걸 알아차렸다. 저 너머 주택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다의 엄마는 이다에게 정신이 팔려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야옹." 

 고양이가 작은 소리로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다 엄마의 관심사는 그저 이다한테 쏠려 있어서 고양이가 울거나 말거나 이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오옹~"

 고양이가 길게 울었다.

 "엄마 고양이가 저기 산대."

 이다가 주택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길고양이야."
 "야옹."

 고양이는 고개를 이다가 가리키는 곳으로 돌리며 울었다.

 "아냐, 저기 산대."

 이다가 답답한 듯 약간 찡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그래, 이제 집에 가자."

 이다 엄마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이다의 손을 잡고 집에 가려고 걸음을 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고양이가 울었다.


"야옹."


 이다가 엄마 손에 끌려가듯 걸어갔다.
 이다는 걸어가면서도 고양이가 앉아있는 뒤쪽을 돌아보며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야······."  

 이다는 이제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때 주택가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야~"

멈칫

 이번에는 이다의 엄마도 그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
 이다의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에게로 다가갔다.

 "고양이 도망나왔나보다."
 "캬옹?"

 고양이의 몸이 붕 떴다.
 이다의 엄마가 고양이를 잡아 들어 올렸다.

 고양이는 잡혔네 라고 말하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이 되었다.

 고양이는 발버둥 치지 않고 얌전히 잡혀주었다.


 이다의 엄마는 이다와 함께 집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다에게 고양이를 안겨주며 말했다. 

 "고양이 갖다드려."
 "이야오옹~~~"
 "고양이."

 이다가 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던 집주인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물을 뿌리고 있던 집주인은 뒤를 돌아봤다.

"야옹."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자고 있던 고양이의 귀에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자~"  

 국자를 든 집주인이 밥 먹자는 소리에 고양이는 잠에서 깨어나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갔다.

 고양이는 'MEAL'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집주인은 이 'MEAL'을 만드는 사람, 밀 메이커라고 불린다.

 밀 메이커는 고양이가 식사하는 동안 옆에 있는 상 앞에 앉아 고양이에게 말을 했다.

 "자꾸 가출하면 안 돼. 어제는 순간 어디 갔는지 몰라서 위험했어."

 고양이는 심드렁하게 음식을 씹으며 생각했다.

 '밥도 말도 씹어야겠다옹.'

 밀 메이커는 고양이가 듣거나 말거나 상에 한쪽 팔을 괴고 계속 말했다.

"꼬맹이가 널 안데려다 줬더라면······."

 그 말에 고양이가 식사하다 말고 밀 메이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꼬맹이 말인데옹"
 "말 돌리지 말고."
 "어린이집 못 간다고 했다옹"

 밀 메이커가 괸 턱을 풀고 팔을 내리며 언성이 살짝 높아졌지만, 고양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말을 이었다.

 "어제 날 데려다줬는데 보은해야 하지 않을까옹?"
 "네 가출인데 내가 왜."

 밀 메이커가 딱 잘라 말했다.

 "꼬맹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거 아니냐옹?"

 정곡을 찔린 듯, 밀 메이커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고양이의 말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흠."

 고양이가 말을 이었다.

 "이름은 '이다'라고 했다옹."
 "이다?"

 밀 메이커가 이번에는 귀 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밀 메이커의 물음에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는 어제 들은 대로 어디에 사는 지도 말했다.

 "요 앞에 쉽터 원룸 산다고 했다옹."
 "흐음."

 밀 메이커는 다시 고민하듯 턱을 괴었다.



 며칠 뒤 이른 아침, 고양이는 마당의 풀 위에 누워서 등을 문질문질 긁고 있었다.

 "고양이야."
 "뭐냐옹!?"

 이전처럼 오는 것을 전혀 눈치 못 챘기에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놀랐던지, 털이 곤두서고 등이 둥그렇게 되고 몸이 뻣뻣하게 될 만큼 공격적인 자세로 변했다. 

 "안녕?"

 마당의 울타리 너머로 이다가 웃으며 인사했다.

 "아, 너였냐옹."

 이다를 발견하자 고양이는 경계를 순식간에 풀고 침착하게 말했다.

 "하여간 신기하다옹."

 이다가 해맑게 웃으며 고양이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다..

 "나 내일부터 어린이집 다녀!"

 그 말을 들은 고양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축하한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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