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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캣츠비안나이트

대통엔터테인먼트 1

SooyangLim 2020. 6. 30. 13:41

  그리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집에서 태어났다. 집 근처 초등학교 중학교 잘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 갈 때가 되었다. 뭐 1지망 2지망 어쩌구 저쩌구 넣었던 것 같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 난생 처음 야자도 하고 뭐도 하고 하면서 다니다보니 문과 갈지 이과 갈지 정하라고 하네? 예체능은 처음부터 나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때까지는 그냥 있어 보이는 거 대충 장래희망이니 진로니 말 하고 다녔는데, 이쯤 되니 뭔가 또 고민해야 될 것 같은 순간이 됐다. 근데 나름 머리를 굴려도 딱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문과와 이과 과목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자니 난 수학을 싫어하고 잘 못하잖아? 진로니 장래희망이니 뭐니 그런 거 보다 일단 수학이 관건이었다. 수학 못하는데 수학 하다간 성적 완전 망쳐서 대학 이상한데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디로 갈지 결정했다. 그래, 가자! 문과로!

 그렇게 문과를 가서 이따금씩 농땡이 피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다보니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그렇게 전 국민이 요란법석 한, 하지만 또 전 국민이 조용해진다는 수능을 봤다. 물수능 불수능 다 떠나서 수능 날 기적이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점수가 더 잘나오길 바랬지만, 딱 그만큼의 성적을 받았다. 

 이제 또 대학을 가야되는데 대학이야 성적 맞춰서 가면 가는 건데, 문제는 과다. 문과는 과보다 대학이 중요하다니 일단 대학을 잘 가야 된다 뭐 그런 말이 돌았던 것 같다. 근데 그래도 그렇지 너무 아니다 싶은 과를 갈 수는 없잖아? 

 그때까지도 난 진로니 장래희망이니 남들이 말하면 적당히 둘러대기만 했지 어딜 가야 될지 뭐 해야 될지는 아직도 확실한 게 없었다. 아니 뭐 좋아 하는 게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걸로 공부하고 먹고 살고 하자니 그게 축구, 게임, 예능 등등 이었다. 남들 다 좋아하고 남들 다 하는 거라서 어디 가서 이거 하고 싶다 이걸 잘한다고 말하기엔 민망한 정도였다.

 아, 근데 내가 언어 성적이 좀 높았다. 반에서 책 많이 보는 친구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책은 좀 본 편이고, 나름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 같은 거 하면 상 몇 번 탄 적 있어서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기도 했잖아? 그리고 뭐 이제야 안 건데 대학가서 이것저것 하다보면 편입? 뭐 그런 거 있다던데 그거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뭐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한테는 그냥 그 과 가서 뭐 하겠다 하면서 적당히 인터넷에서 본거 줄줄 읊고는 대학이랑 과를 정해서 갔다.   

 그래서 갔던 과가 국어국문학과다. 가기 전에는 나름 뭔가 문학청년도 생각나고, 학교 국어 선생들도 괜찮게 지내는 것 같고, 찾아보니 신문기자 같은 쪽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하다가 안 맞으면 진짜 편입 같은 거 하면 되겠지.

 대학 가기 전에 알바하면서 돈도 좀 벌었다. 대학에 가서도 뭐 특별한 거 없고 과에 있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고, 술도 먹고 가끔 강의도 땡땡이 치고. 축제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예인 공연하는 것도 보고. 첫 학기 성적? 아 솔찍히 그렇게 한 거 치고는 좀 잘 나왔다. 아직 고등학생 때 물이 덜 빠져서 그런가 생각보다 열심히 했었거든. 문제는 1학년 2학기였지.

 다음 해에 군대에 가야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지기도 하고 1학기 때 별로 못 즐긴 것 같은 거야. 학교를 아예 안 간 건 아니지만 알바도 하면서 돈 벌어서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학기 끝나고 집에서 좀 쉬다가 다음 해 봄에 국방색의 늪으로 끌려들어갔다.

 남들 다 가는 군대라는데 그렇게 ㅈ같을 수가 없었다. 훈련소 들어가서 자고 다음 날 눈 떴는데 진짜 거기가 꿈같더라. 근데 현실이야, ㅅㅂ. 근데 자대는 더 지옥이더라. 걸레 짜는 것부터 관물대 각도까지 별 시덥잖은걸로 꼬투리 잡고 물고 늘어지는데 정말 패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빨았던 걸레보다 더 걸레 같은 놈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정말 입에 담기도 싫은 패드립에 음담패설 하는 쓰레기들이 왤케 많은지. 

 특히 나더러 잘난 척 한다며 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격지심 가지고 괜히 질투하는 양아치새끼 때문에 반 년 가량은 고생했다. 말년휴가 돌아오는 날에 정말 제대로 밟아주고 싶었는데, 그냥 엮이기 싫어서 무시해버렸다. 그래도 그 인간이 워낙 쓰레기라 그런지 내게 동정표 날려준 사람이 있었고, 나름 내가 나쁘게 군생활한 건 아니었던지 그놈이 나가고 상병 달고 나선 무난히 군생활을 마쳤다. 내 맞후임 녀석은 애들 갈구다가 찔려서 군기교육대도 갔다오고 하는 그런 소동이 있고 그랬지만 난 그냥 무난히 지나갔다.

 국방색의 지옥을 벗어나 드디어 사회인이 되어서는 나름 알바도 하고 돈도 좀 벌어서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전역 하고 보니 약간 철이 들어서 일단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별과제 트롤링 해도 성적 개판 나고 교수 잘못 만나도 성적은 개판 났다. 근데 또 기대 안 한 과목을 잘 받기도 하고. 

 근데 공부 좀 해야겠다하고 마음먹었는데 복학생이 되서 어쩌다보니 학교에서 이것저것 활동도 많이 하고 주변 사람 통해서, 혹은 인터넷 통해서 알음알음 알게 돼서 외모도 좀 꾸밀 줄도 알게 됐다. 게다가 군대 짬밥 스킬도 붙고 알바도 하다 보니 말주변도 늘고 하다 보니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여자 친구가 생겼다. 

 정신없는 나날 속에서 대학 마지막 학년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별 생각 없었는데 4학년 때 되니까 현실자각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지독한 취업난에 국문학과에 딱히 뭐 이력서 적을 만 한 건 없고, 학점은 나쁜 건 아니지만 특출 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취업활동을 하기 위해 뭔가 하자니 어느 회사나 분야를 목표로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이름 좀 있는데 들어가기에는 턱도 없고…….

 어떡하지? 그렇다고 알바만 계속 할 수도 없고……. 그런 생각으로 갈피를 못 잡은 채 그냥 이름 좀 있는 회사들 이곳저곳 이력서만 넣던 중에 5학년 걸어놓기는 또 뭐해서 졸업은 해버렸고, 결국 백수가 되어버렸고…….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대학 선배들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해봐도 답은 안 나오고 집에 있자니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취업 준비 한다 공부 한다 하면서 문제들 슥 훑어보니 잘 하면 될 것도 같아서 공무원 공부도 좀 깔짝거려보다가 국어 말고 다른 과목은 전혀 안 되서 두 달 공부하고 바로 때려 쳤다. 이거 하다 안 되면 시간 낭비이고 리스크가 큰 데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이거하다 저거하다 하면서 1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보내다가 나름 어디서 이름은 들어본 작은 신문사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붙었을 때 우리 부모님과, 여자 친구가 엄청나게 기뻐했다. 돈을 그렇게 많이 받는 건 아닌데 일단 정규직이 됐다는 기쁨이 정말 컸다. 근데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쩐지 급하게 뽑더라. 하……. 직장인이 된 건 좋은데 일도 적응이 안 되고 언론이라는 놈들이 그렇게 꼰대일 수가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근로기준법에 위반된 사항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딱 첫 월급 받을 때는 기뻤는데, 그게 다였다. 

 그때부터 카드도 만들었는데, 결국 인생이 돈을 벌어서 저축하고 뭐 하고 그런데 아니라 일단 써놓고 카드 값을 갚기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돈이라도 신나게 쓰기라도 했냐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회사 가까운 곳에서 자취까지 시작해서 돈이 당최 모이질 않았다. 그리고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쥐꼬리 같은데 돈 모은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게다가 시간도 없고. 그나마 학자금 대출 다 갚고 나니, 그나마 그 전에 비해선 좀 모이긴 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덕분에 여자 친구 보는 시간도 줄고, 쉬거나 딴 거 할 시간도 없고, 인생의 질은 계속 하락 하고, 회사는 계속 뭐 같고. 괜찮은 인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몇몇 인간들은 정말 더 뭐 같고. 내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결국 1년 정도 다니다가 회사를 관뒀다. 

 다들 딴 데 들어가고 관두라는데 그런 게 그 당시엔 귀에 들어올 리가 있나? 일단 때려치고 보자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걱정도 되었지만, 일단은 홀가분하긴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 할 만큼의 돈도 좀 있었고. 근데 문제는 언제까지 백수생활이 계속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좀 지나니 결국 돈을 아껴야 했다.

 이때쯤 되니 다들 말하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서 체감하기 시작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는 그 말. 그리고 첫 회사는 잘 들어가야 된다는 말. 그렇다. 제대로 꼬여 버린 거다. 

 어라? 근데 문제가 하나 더 터졌다. 내가 회사를 관두고 나니, 처음에는 위로도 해주고 괜찮았는데, 다시 백수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자 친구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려고 해도 나도 이미 신경이 계속 예민해져만 갔고, 싸우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리고 회사를 관둔지 반 년 쯤 됐을 때 결국 이별통보를 받았다.

 안 그래도 돈 없는데 술 잔뜩 처마시고 방안에서 굴러다니고 또 술 마시고 뒹굴고 그렇기를 계속 반복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여자친구 SNS를 보는 일도 잊지 않고. 가끔 전화도 걸어주고. 하지만 처음에는 좀 받아주던 전화도 나중에는 그마저도 수신거절 음성 뿐. 추잡하기 그지없는 날이 계속 되었다.

 슬슬 나이가 차니 할 만한 알바 자리도 안 구해지고 답이 없었다. 1년 일 한 건 딱히 경력으로 봐주지도 않는 곳이 많아서 백수 생활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경력 3년, 5년 일한 사람도 구직시장에 넘쳐나게 많았다. 그렇다고 백수생활을 만회할만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남들 하는 만큼 하고 남들 하는 만큼 살았는데. 왜 나는 그만큼도 안 되는 것 같지?

 그 때 쯤 우연히 인터넷에서 푸드 트럭 지원에 관한 정부지원금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청년 관련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 솔깃했다. 한 번 해볼까? 그런데 문제는 지원해줘도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택배 상하차 알바를 잠깐 뛰었다. 하지만 금방 몸살 나서 며칠 못하고 때려 치고, 2교대 식품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공장에서 일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엄마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왜냐면 우리 엄마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환갑에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도 내가 일하는 곳 말고 다른 식품 공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잠깐씩 쉴 때 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집에 가는 길에 담배 한 대 물고 있으면 담뱃불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 마다 내 눈시울도 붉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난 악착같이 모아 장사 밑천을 모았다. 그리고 정부 지원금도 받아서 푸드 트럭을 창업하게 되었다. 올 해 9월의 일이다. 

 29살, 그리고 11월. 
 나, 박동현은, 대왕꼬치 푸드 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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