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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중단편 및 기타

술 한 잔

SooyangLim 2022. 7. 9. 16:44

 그 날은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을 해서 상경한 지 1년이 좀 넘었던 시점이었다. 

 "어우, 추워."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차 문을 열었다. 이제는 겨울이 한층 다가오고 있었다. 11월 말, 직장인에게는 고역인 목요일. 나는 퇴근을 위해 몇 달 전에 할부로 산 차에 올라탔다. 차 시트가 몸에 닿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으으."
 
 나는 황급히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따뜻한 바람이 나오자 이내 뻣뻣하던 몸이 스르륵 녹는 게 느껴졌다. 난 녹은 눈사람이 된 기분으로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미끄러지듯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오늘 일부 지역에서 눈이 오고 있습니다. 일부 도로에서는 교통 사고가…」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정신을 빠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차를 모는데, 

 「춤추는~」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회사인가 싶어서 폰을 집었다가, 운행 중이라 안되겠다 싶어서 일단 차가 신호 대기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울리던 폰은 멈췄다. 나는 다시 전화해줘야겠다 싶어서 폰을 보니 발신자 정보가 없었다.

 "뭐지? 광고? 보이스 피싱? 대부업체?"

 나는 안 받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띠링」

 그때 문자가 왔다.

 「야 취직하면 술 산다며. 사 줘.」

 이번에도 발신자 번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자를 보자, 고향의 친구 중의 하나가 보낸 건가 하고 생각했다.

 "누구지? 아니, 한 잔 하자고 할 거면 누군지 말을 해야지."

 난 투덜거리며 이런 짓을 할 만한 친구에게 바로 전화했다. 

 "야, 니가 전화했냐?"

 고향에 있는 절친이었다.

 "무슨 전화?"
 "술 사라고 한 거. 발신자 제한으로 전화 왔던데. 너 아냐?"
 "아닌데. 나 지금 병원 가고 있는데."

 절친놈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이 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난 그럼 광고겠거니 하고 말했다.

 "아 그래? 그럼 광고인가 보다."
 "아니면 보이스 피싱이거나."
 "그렇겠지? 어쨌든 아니면 됐다. 쉬어라."

 그렇게 말하고 끊으려는데,
 
 "야, 내일 밤에 내려 와."
 "왜? 아, 내일 금요일이네. 주말에 보자고? 안 될 것 같은데. 어, 야 초록불이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술 얘기 하니까 술 땡기네."

 난 그렇게 말하며 배달 음식과 맥주를 한 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원룸에 도착해서 맥주 한 캔과 저녁 밥을 먹고 한창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춤추는~」

 "아이 씨발… 이 시간에 누가 전화질이야."

 나는 욕을 하며 폰 화면을 바라봤다. 번호가 떠 있지 않았다. 

 "아이씨 또……."

 난 거절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잠에 드는데,

 「춤추는~」

 또 전화벨이 울렸다. 난 이번에는 받으면 욕하려고 전화를 받았다.

 "야, 깽민이. 자냐?"

 욕하려다가 익숙하게 내 학창시절 별명을 부르는 말에 나는 멈칫했다.

 "…누구…?"
 "내 화준이."
 "아아! 화준이냐. 개오랜만이네!"
 "개오랜만이지."

 나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놀랐다가, 이내 이 자식이 계속 전화했구나 싶어 말했다.

 "야, 니가 전화 자꾸하고 술 사라고 문자했지?"
 "어."
 "야 이……. 아니, 니 번호로 전화하지 왜 발신자 번호 제한 걸어?"
 "폰 박살났어."

 난 그 말에 한 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어휴…….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시간에 전화하냐?"
 "아까부터 연락했거든? 니가 안 받은 거 거든?"
 "아, 알았다 알았어."
 
 그때 화준이가 말했다.

 "야, 술 사 줘."
 "만나야 사주지. 지금 나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사주냐? 그리고 지금 새벽이잖아."
 "서울 가면 사주기로 했잖아."
 "…너 지금 서울이야?"
 "어."
 "진짜!?"

 난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서울에 웬 일이냐? 취직했냐?"
 "아니. 면접 보러 가는 길."
 "아 그래? 그럼 면접 보고 지금 한 잔 하는 김에 나 부르는 거냐?"
 "아니. 면접 못 봤는데. 지금 술도 안 먹고 있고."

 그 말에 나는 이 새끼의 의도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너 잘 데 없어서 연락 한 거지? 재워달라고?"
 "아니. 술 사달라니까. 너 취직하면 술 사준다며. 나 자러가야 돼. 네가 사 주는 술 먹고 갈 거야."
 "야야. 그럼 내일 사줄게. 지금 너무 늦었어. 내일 나 출근해야 돼."

 나는 내일 출근을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이 새끼는 끈질기게 졸랐다.

 "아, 안 돼. 나도 시간 없어. 그냥 오늘 사. 먹고 바로 갈게. 내가 너네 집으로 간다?"
 "에이씨 끈질긴 새끼."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으면서 말했다.

 "야, 그럼 니가 술 사와. 문자로 주소 보내줄 테니까 이쪽으로 와. 내가 돈 줄 게."
 "야이씨. 니가 사야지. 너네 집 근처잖아."
 "야, 오는 길에 사면 덧나냐? 야 일단 나 집 좀 치울테니까 집으로 와. 끊을게."

 난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문자로 주소를 보냈다.

 "에이, 끈질긴 새끼. 내일 먹지."

 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좀 치우는데,

띵동-

 집 벨이 울렸다.

 "야! 깽민이~" 

 화준이 목소리였다.

 "벌써? 아니, 이 새끼는 집 앞에서 대기타다가 온 거 아냐?"

 나는 투덜거리며 문을 열었다.

 "졸라 빨리도 오네."
 "어우, 추워."

 화준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화준이 손에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을 걸 보고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야, 왜 빈 손이야?"
 "니가 술 사준다고 했잖아."
 "사오면 돈 준다니까?"
 "야야, 나 여기 처음 와봐서 어디 파는 지도 몰라."
 "아니, 바로 앞에 편의점 있거든? 오기는 존나게 빨리 와놓고는……. 네가 우리집 앞에서 대기타는 동안 술 사왔으면 두 번은 갔다왔겠다!"

 내가 그렇게 뭐라하는 동안 화준이는 내 침대에 벌렁 누웠다.

 "아 몰라. 난 얻어먹으러 온 거야. 이야, 집 좋네. 서울에 집도 얻고. 출세했네, 깽민이."
 "놀리냐? 좋기는 무슨. 월세에 원룸이거든?"
 
 난 그렇게 말하며 냉동실에 있는 냉동 돈까스를 꺼내 후라이팬에 올렸다. 화준이는 누워서 물었다.

 "월세 얼만데?"
 "45. 1000에 45."
 "미쳤네."
 "서울은 다 그래. 좀 살만한 집 얻으려면 다 이래."
 "취직해도 못 살았겠네."
 "못 살긴. 막상 살면 또 다~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너 면접 본다는 거 잘 보고 어서 상경해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밥 상을 폈다. 화준이는 밥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아이… 난 됐어. 더 좋은 데 갈 거야."
 "더 좋은 데? 어디? 외국 나가고 싶냐?"
 "외국은 무슨.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데."
 "하긴. 너 토익 점수 완전 헬……."
 "아, 닥쳐."

 나의 디스에 화준이가 바로 말을 잘랐다. 난 낄낄 거리며 돈까스를 뒤집으러 가며 말했다.

 "면접 본다는 거나 잘 봐라. 이 시간에 내가 이렇게 요리를 다 해주고 있으니까."
 "술은 안 사오냐?"
 "아, 있어 봐. 새끼, 진짜 술에 엄청 집착하네."

 난 그렇게 말하며 냉장고에 넣어둔 마시다 만 소주를 꺼냈다.

 "지금 나가기 좀 그러니까 이거라도 마셔."
 "먹던 거 말고! 너 술 산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아, 새끼 거……."

 나는 욱 하는 걸 참고 접시를 꺼내서 돈까스를 담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달래듯 말했다.

 "야. 지금 새벽이고, 나 내일 출근 해야 되고, 밖에 졸라 춥거든? 오늘은 일단 그것만 먹고 땡 하자고. 내일 사줄게. 내일 금요일이잖아."

 나는 그렇게 말 하고는 돈까스를 접시에 옮겨 담아아서 밥상으로 가져왔다.
 근데 화준이 이 새끼는 또 고집을 부렸다.

 "아니, 야 너가 사 온 거 딱 한 잔만 먹으면 돼. 그럼 갈 거야."

 '아니, 진짜 이 새끼가 왜 이래? 개진상이네.'

 난 짜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취직하기 전에 입버릇처럼 취직하고 나면 같이 술먹자라고 하고 술자리에 못 갔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취직하고 나면 꼭 사준다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 얘도 취준생이고, 면접도 보러 왔고, 오랜만에 나 보자고 왔으니까…….'

 나는 좋게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다시 한 번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야야, 그 소주도 어차피 내가 산 술이거든? 일단 그거 먼저 다 마시고 나중에 사오든지 할게. 일단 마셔."
 "…알았어."

 화준이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저를 가져오며 물었다.

 "근데 무슨 회사 면접인데?"
 "ㅇㅇ."
 "ㅇㅇ? 와, 너 거기 서류 붙었냐? 야, 진짜 잘 봐야겠다! 되면 대박인데."
 "…어차피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보러 가지 말 걸 그랬…"
 "야, 뭐 벌써 속단하냐!? 자신감을 가지라고!"

 나는 우울해 보이는 화준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나는 뭐 여기 될 줄 알았겠냐? 자신감 좀 가져."
 "…그래."

 왠지 씁쓸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괜히 딴 주제로 말을 돌렸다.

 "야, 근데 신기하지 않냐? 난 우리가 이런 모습이 될 줄 몰랐어. 너 현수 알지? 기억나냐, 현수?"
 "어, 알지."
 "걔 지금 일본에서 박사 과정 밟고 있잖아. 난 걔가 대학원 갈 줄 몰랐어. 공부 하는 거 졸라게 싫어하더니……."
 "걔 지금 한국 들어왔어."
 "엥? 현수?"

 난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화준이가 돈까스를 먹으며 말했다.

 "응. 밤에 들어왔을껄."
 "언제? 오늘?"
 "이젠 어제지."
 "뭐야? 갑자기?"
 "응. 주말에 다 볼 수 있을껄."

 난 그 말에 아까 내 절친과의 통화가 생각났다.

 "아, 아까 주말에 내려오라는게 현수와서 그런가?"
 
 난 그렇게 말하고는, 

 "다들 오랜만에 보고 싶다."

 라고 말하며 술 잔에 술을 채웠다.
 화준이가 그 말에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넌 타지역에 살아서 되겠냐. 쉽지 않잖아. 현수도 올 수 있을 줄 몰랐는데 왔고……. 그리고 넌 현수보다 더 바쁜 몸이잖아."
 "글쎄. 가야 되면 가야지."
 "바쁘면 안 될 수도 있지. 그래도 이번에 보는 것도 괜찮고. 어때?"
 "일단 되어봐야 겠지만……. 내려갈까?"
 "애들 오랜만에 다 모이는 거 보고 싶었는데……. 뭐 어쨌든 보겠네."

 화준이는 그렇게 말하며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진짜 자주 모였는데 말야. 기억나냐? 우리 20살 되자마자 술집에 들어 간 거? 그때…"

 그런데 술도 들어가고 지금이 새벽이라 그런지, 화준이의 얘기를 듣다보니 점점 잠이 왔다.

 "…그래서 그때 우리가… 야, 자냐?"
 "……."
 "야, 깽민! 깽민이!"
 "…어?"
 "자냐?"
 "…어. 깜박 졸았다."

 난 그러고는 시계를 확인해보니, 벌써 새벽 5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야, 나 10분만 잘게."

 난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로 슬슬 올라갔다.

 "야! 술 사오고 자!"
 "아, 나 10분만."

 그러고는 나는 이불을 덮었다.

 "야!"

쿵 

 화준이가 크게 소리치자 하자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내 휴대폰이 툭 떨어져서 방바닥에 부딪혔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아서 이불을 확 뒤집어 썼다. 그리고는 듣기 싫다는 듯 엎드려버렸다.

 "나중에 자! 나 네가 사는 술만 마시고 간다니까!?"

 라고 말하는 말하는 화준이의 목소리가 어쩐지 내 앞의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난 지금 베개를 파묻고 있는데.

 "야, 10분만 잘게, 10분만……." 
 "야!"

 나는 큰 소리에 닥치라고 얘기하려고 눈을 잠깐 뜨고 뭐라 하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났다. 베개가 울룩불룩하더니,

 "야! 술 한 잔 사라고!"

 베개에 화준이의 얼굴 형상이 튀어나와서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으악!"

 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 

 집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창 밖으로 은은하고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꽉 차 있는 화준이의 술 잔과, 텅 빈 내 술잔, 그리고 반 보다 조금 더 적게 있는 소주병이 보였다.

 "…갔나? 하, 새끼. 자꾸 술 사라고 하니까 이상한 꿈꾸네."

 난 내가 자니까 화준이는 집에 갔겠거니 하고 난 다시 잠들어버렸다.



 「삐비비비빅-」

 나는 알람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얼마나 깊이 잤는지, 스누즈 알림이 벌써 3번이나 울린 시점이었다.

 "어, 씨! 회사!"

 난 급하게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차를 몰고 회사로 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난 가까스로 출근 시간 전에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금요일 오전 업무를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서야 화준이가 생각났다.  

 '…면접 잘 봤으려나? 지금 면접 중이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화준이가 정확히 언제 면접을 보는지 못 몰어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 면접이지?"

 난 인터넷으로 화준이가 말한 회사의 채용일정 공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면접 날짜를 찾아봤다.

 "엥?"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짜는 어제였다.

 "…새끼. 면접 잘 못봤구만. 솔찍하게 말하지……. 괜히 안 본 척을 하고는……."

 난 울적해졌다. 좀 더 위로를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난 아직 안 내려갔으면 저녁 때 술 한 잔 하자고 말하려고 화준이의 번호를 찾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녀석은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수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통지를 듣고서야 화준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아, 맞다. 폰 부서졌다고 했지."

 나는 문득, 현수가 와서 다 모인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현수한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현수, 너 어제 밤에 한국 들어왔다며?"
 "어. 밤에 급하게 들어왔지."
 "이번에 다들 모이나? 나도 내려갈까?"
 "당연히 와야지!"

 현수가 약간은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알았어. 갈게, 갈게. 토요일? 그러니까 내일?"
 "오늘 내려와야지. 내일 아침에 발인인데."
 "어? 뭐라고?"
 "발인이라고."
 "발인?"
 
 난 이 이상한 대화에 갑자기 사고가 멈췄다. 발인이라니? 난 맥락없이 튀어나온 단어에 갑자기 순간적으로 그게 무슨 단어인지 파악조차 안 됐다.

 그때 옆에서 내 절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수와 절친놈이 뭐라뭐라 대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절친의 목소리로 바꼈다.

 "야, 깽민이."
 "너네 같이 있었냐?"
 "…뭐야. 너 모르고 얘기 하는 거야, 뭐야?"
 "뭘?"
 "소식 못 들었어?"
 "뭐를? 현수 한국 들어 온 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절친이 어디다가 뭐라뭐라 말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절친이 말했다.

 "너 현수 온다는 말은 누구한테 들었냐? 다들 정신 없어가지고 아무도 너한테 아직 얘기 못했다는데."
 "화준이한테 들었는데?"
 "뭐?"
 "면접 본다고 와서는 우리 집에 와서 술 한잔 얻어 먹겠다고 새벽에 찾아왔거든."
 "……."
 
 어쩐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더니 절친놈이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 개소리 마."
 "개소리는 뭔 개소리야."
 "화준이가 어떻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뭘 말도 안 돼. 어제 그 새끼 끈질기게 술 사오라고 지랄하다가 갔는데. 내가 전에 술 사주겠다고 한 거 때문에 얻어먹겠다고 왔어."

 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술 한 잔 얻어먹고 간다고 새벽에 찾아오지를 않나, 자꾸 술 사오라고 하고, 한 잔만 마시고 간다고 개지랄을 하다가 갔다니까. 그 새끼 평소에는 그 지랄 안 했는데……. 면접 떨어져서 그랬나보지만……. 뭐, 결국엔 내가 잠들어서 못 샀어."

 난 씁쓸하게 말했디. 

 "어쨌든 그래서 오늘 술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그 새끼 폰 깨져서 번호 없어졌다고 해서…"
 "야."

 절친놈이 갑자기 말을 잘랐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숨을 한 번 고르고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지금… 화준이 장례식장에 있어."
 "…뭐?"
 "어제 면접 보러 가다가 빙판길에 차 미끄러져서 사고 나서 죽었어."
 
 난 그 말을 듣자 순식간에 몸 안의 모든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절친놈이 말했다.

 "…술 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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